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 2 고찰 - 근거율에 의존하지 않는 표상 /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중 제36장
쇼펜 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 ~ 1860 )
독일의 철학자.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불린다. 무엇보다도 헤겔의 관념론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의지의 형이상학을 주창한 인물로 중요하다. 그의 글은 나중에 실존철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에 영향을 끼쳤다.
1811~13년 베를린대학교를 다녔고 1813년 여름 동안에 루돌슈타트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여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바이마르에서 지내면서 괴테와 함께 여러 가지 철학적 주제를 놓고 토론했다.
1819년에는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저술했다.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잠깐 교수를 지낸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생애 말년에는 그의 저작 대부분에 마무리 손질을 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판이 1859년에 나왔고, 1860년에는 〈윤리학〉 재판이 나왔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 2 고찰 - 근거율에 의존하지 않는 표상 /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중
제36장
개체로서 주관의 인식을 위해, 이념이 갈라져 다원성으로 나타나는 단순한 형식,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을 고찰하는 것이 수학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공통의 이름으로 갖는 이 모든것들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근거율을 따르며, 과학의 주체는 현상이고, 그 현상의 법칙이며, 연관이고 거기서 생기는 관계들이다.
모든 관계들 밖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홀로 원래 세계의 본질적인 것, 세계 현상의 참된 내용, 어떠한 변화에도 종속 되지 않기때문에 언제나 동일한 진리로 인식되는 것, 한마디로 말해 물자체, 즉 의지의 직접적이고 적절한 물자체인 이념을 고찰하는 것은 어떤 인식 방식일까? 그것은 예술, 즉 독창적천재의ㅡ작업이다. 예술은 순수 직관에 의해 파악된 영원한 이념, 즉 세계의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을 재현한다. 그리고 재현할 때의 소재에 따라 예술은 조형 예술이 되고, 시나 음악이 된다. 예술의 유일한 기원은 이념을 인식하는 것이고, 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이러한 인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예술은 자신의 관조대상을 세상만사의 흐름에서 끄집어내어 그것을 홀로 고립시킨다. 본질적인 것, 이념만이 예술의 대상이다. 우리는 예술을 근거율과는 무관한 사물들의 고찰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경험과 과학의 고찰방식이 수평으로 달리는 무한한 선에 비유될 수 있다면, 예술의 고찰 방식은 선을 임의의 모든 점에서 자르는 수직선에 비유될 수 있다.
이념은 앞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객관에 완전히 몰입한 순수한 관조를 통해서만 파악된다. 그리고 창조적 천재의 본질은 바로 그러한 월등한 관조 능력에 있다. 그런데 관조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관계를 완전히 잊는 것을 요구하므로, 천재성이란 다름아닌 가장 완전한 객관성, 즉 자기자신 즉 의지를 향해가는 주관적 방향과는 달리, 정신의 객관적 방향이다. 그에따라 천재성이란 순전히 직관적으로 행동하고, 직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에따라 자기자신을 한 순간 완전히 포기하고, 순수하게 인식하는 주관으로서, 맑은 세계의 눈으로 남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숙고된 예술을 통해 파악된것을 재현하고"흔들리는 현상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영속적인 사상으로 고정시키기"위해 필요한 만큼 지속적이고 사리분별을 동반하는 것이다. 창조적 천재가 어떤 개인에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떤 개인의 의지에 봉사하는 데 요구되는 인식력을 훨씬 초과하는 정도의 인식력이 그에게 부여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자유롭게 남아도는 이러한 인식이 이제 의지가 가미되지 않은 주관이 되고, 세계의본질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된다.
천재는 사물들 속에서 자연이 실제로 만든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려고 노력은 했으나 전권에서 언급한 그 형식들 상호간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실현시키지 못한 것을 보기 위해 환상을 필요로 한다. 환상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천재 그 개인에게 실제로 나타난 객관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 이때문에 환상의 유별난 강렬함이 천재성의 동반자, 그러니까 천재성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환상이란 이념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이념의 인식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 작품이다. 천재는 인식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의지에 봉사하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생 자체를 고찰하는데 시간을 보내며, 사물의 다른 사물등에 대한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이념을 고찰하려고 노력한다.
이념을 자신의 영역내에 두고 있는 직관적 인식은 대체로 인식작용의 근거율에 인도되는 이성적 내지는 추상적인 인식과는 반대입장에 있다. 감성과 오성이 받는 직관적인 것의 극히 강렬한 인상은 단조로운 개념을 압도해버리므로, 행동은 더이상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관적인 것의 인상에 의해 좌우되므로, 바로 그때문에 행동이 비이성적으로 된다. 그에따라 현재의 인상이 그들에게 너무 강해져서, 그들을 사려깊지 못함, 격한 감정, 열정으로 몰고간다. 천재성과 광기는 서로 접해있어, 경계를 넘나드는 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종종 지적되었고, 심지어 시적인 감격이 일종의 광기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광기가 섞이지 않은 천재는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또한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모종의 광기 없이는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또한 무상한 사물 속에서 영원한 이념을 인식하는 자는 모두 광기를 띠고 나타난다고 말한다.
천재는 사물의 이념만 보고 찾으며, 직관적으로 나타나는 원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근거율에 따르는 관계들에 대한 인식을 버리므로, 하나의 사물이 그것의 전체류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그때문에 괴테가 말하듯이 한개의 사례가 수천개의 경우에 적용된다.
제 37장
관계속에서만 현존을 갖는 개별적 사물들 대신에, 그것들의 이념을 인식하고 이러한 이념에 대해 스스로 이념의 상관개념이 될 수 있는 능력, 그러므로 더 이상 개체가 아니라 인식작용의 순수 주관이 될 수 있는 능력에 그 본질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능력은 정도가 미미하고 다르긴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해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향유할 능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낼 능력도 없을 것이며, 대체로 아름다움이나 숭고함에 대해 전혀 아무런 감수성도 없어서, 이러한 단어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그들보다 훨씬 높은 정도의 인식 방식을 지속적으로 더 많이 갖고 있으며, 그렇게 인식된 것을 임의의 작품에서 재현하는 데에 요구되는 사려 깊음에 의해 그러한 인식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러한 재현이 예술 작품이다. 천재는 자신이 파악한 이러한 이념을 예술 작품을 통해 다른사람에게 전달한다.
예술 작품이란 미적쾌감의 본질을 이루는 인식이 쉽게 생기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이념을 자연이나 현실에서 직접대면하는 것보다 예술 작품에서 대면하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쉬운 까닭은, 예술가는 단지 이념만을 인식하고, 더 이상 현실은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의 작품에서도 오로지 이념만을 순전히 재현하고, 방해가 될지 모르는 우연적 요소를 모두 제거해서 현실에서 이념만을 골라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눈을 통해서 우리에게 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예술가에게 모든 관계를 떠나 존재하는 사물들의 본질적인 것을 인식하는 이러한 눈이 있다는 것이 바로 천재의 재능이고 천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