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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1 Art ㅣ 에른스트 카시러 Ernst Cassirer

louis... 2015. 2. 24. 23:53

예술Art - 1 ㅣ 에른스트 카시러 Ernst Cassirer

 

에른스트 카시러 Ernst Cassirer (1872 ~ 9145 )

문화적 가치에 대한 해석과 분석으로 유명하다.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신칸트주의를 표방한 마르부르크 학파의 창시자 헤르만 코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1919년 함부르크대학교의 철학교수가 되었으며 1930년부터 총장을 역임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독일을 떠나 옥스퍼드대학교(1933~35), 스웨덴의 예테보리대학교(1935~41), 미국의 예일대학교(1941~44)·컬럼비아대학교(1944~45)에서 가르쳤다. 그의 철학은 주로 칸트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인간의 개념들이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방법에 관한 칸트의 기본원리를 확장했다. 칸트 시대 이래로 과학과 문화에 대한 견해들이 크게 변했으므로 칸트의 학설을 더 넓은 인간경험 영역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수정해야 한다고 카시러는 생각했다. 주저 상징 형식의 철학 Die Philosophie der symbolischen Formen(3, 1923~29)은 인간 문화의 모든 표현양식 밑에 놓여 있는 정신적 표상과 기능을 면밀히 검토한 작품이다. 또 다른 주요저작 실체 개념과 기능 개념 Substanzbegriff und Funktionsbegriff(1910)은 개념 형성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다수의 특수한 사례를 추상함으로써 하나의 개념이 형성된다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인간 지식을 조직하는 도구로서의 개념은 특수한 사례를 분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존재하는'(preexistent)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 형식을 연구한 뒤 그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인간 자신의 상징 활동에 의해 규정된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저술들로는 언어와 신화 Sprache und Mythos(1925)·계몽시대의 철학 Die Philosophie der Aufklärung(1932)·인간론 An Essay on Man(1944)·국가의 신화 The Myth of the State(1946) 등이 있다. 그의 철학에 대한 전반적 연구서로는 P.A.실프가 편집한 살아 있는 철학자들 The Library of Living Philosophers시리즈의 제6에른스트 카시러의 철학 The Philosophy of Ernst Cassirer(1949)이 있다.

 

예술 - 1

철학적 사유의 역사에 있어서 미의 현상은 언제나 가장 큰 역설의 하나이곤 했었다. 칸트시대에 이르기 까지 미의 철학은 언제나 우리의 미적 경험을 다른 분야의 원리에 환원시키고, 예술을 다른 분야의 관할 아래 예속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하였다. 칸트는 그의 <판단력 비판 Critique of Judgement >에서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명백하고도 설득력있는 증거를 보여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알렉사드르 바움가르텐은 그의 < 미학 Aesthetica, 1750 >에서 상상의 논리를 건설하려는 최초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어느 의미에서는 결정적이었고 또 매우 가치있는 것이었 던 이 시도도 예술을 위하여 정말로 자율적인 가치를 확보할 수 는 없었다. 이는 상상의 논리가 절대로 순수 지성의 논리와 똑같은 진가를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예술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지식의 <낮은>감각적 부분의 분석일 뿐이다. 한편 예술은 도덕적 진리의 상징으로도 기술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도덕적 해석에서도 예술은 그 자신의 독립적 가치를 전혀 가진 바 없었다. 인간 지식과 인간생활에서의 단계에 있어서 예술은 다만 준비적 단계요, 보다 높은 목적을 지향하는 종속적 및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였다. 예술 철학은 두 경향간의 상극을 드러내고 있다. 언어와 예술은 두개의 반대되는 즉 , 즉 객관적인 극과 주관적인 극 사이를 쉴새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언어 혹은 예술의 이론은 그 어느것이나, 때로는 이 극을 또 때로는 저극을 강조할 수 있으나, 이 두 극 중의 어느 하나를 망각하거나 억압할 수 는 없었다.

 

첫째 경우에 있어서 언어와 예술은 공통되는 제목, 즉 모방의 범주에 포섭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의 주된 기능은 모방하는 것이다. 언어는 소리들을 모방하는데서 시작됐고, 예술은 외부 사물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모방이 근본적 본능이요, 다른것에 환원시킬 수 없는 인간성의 한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인간에게 있어 어린 시절부터 선천적인 것이며 또 인간이 하등 동물보다 나은 성질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세상에서 모방을 가장 잘하는 동물이요,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배운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방은 또한 그칠줄모르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즐거움을 특별히 미적인 경험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이론적인 경험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무엇을 배우고 있다는 것은 비단 철학자에게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밖의 모든 인간-아무리 그들의 배우는 능력이 적다 할지라도-에게서의 기쁨들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이다. 그림을 보고서 즐거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림을 보는 동시에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림속의 사람이 아무개라는 것처럼, 사물들의 의미를 헤아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시학의 역사 전체는 호라티우스(Horace)가 만들어낸 말<시는 그림과 같이>(ut pictura poesis)와 시모니데스의 말 <회화는 말 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 시는 그림과는 그 양식과 수단이 다르지만 모방이라는 일반적 기능에 있어서는 다를 점이 없다. 이 모든 이론은 어느정도 예술가의 창조성을 허용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예술은 자연의 모방>(ars simia naturae)이라는 원리는, 엄밀하고 비타협적인 의미에서는 유지될 수가 없었다.

 

<모든 미가 진이라 > 할지라도 모든 진이 반드시 미는 아니다. 최고의 미에 도달하려면 자연을 재현하는 것에 못지않게 자연을 떠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이 자연을 떠나는 정도, 그 적당한 비례를 결정하는 것은 예술이론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목적을 위해서는 있음직한 불가능성이 있음직하지 않은 가능성보다 차라리 낫다고 주장하였다. 제크시스는 이 세상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을 그렸다는 비평가의 비난에대한 올바른 대답은, 거기 그려진 사람들은 그와 같이 그려진 것이 오히려 더 잘된 것으로, 그 이유는 예술가는 모델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야만 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일반적이고 아무 차별없는 의미에서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재현>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모델의 형상을 이지러지게 하지않고 그 모델을 미화할 수 있는가? 이 이론상 예술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거짓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결코 될 수 없다. 루소의 이름은 일반 사상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미학에 있어서도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루소는 예술 이론의 고전적 및 신고전적 전통을 모두 배척하였다.그에게 예술은 정동과 정열의 분출이다. 루소의 <신엘로이즈 Nouvelle Heloise>는 하나의 새로운 혁명 세력이 되었다. 여러 세기동안 유력하였던 모방원리는 이 이후로 하나의 새로운 개념, 하나의 새로운 이상- <성격 예술>-에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미는 사실상 2차적이고 파생적인 면일 따름이다. 괴테는 그의 논문 <독일의 건축 예술에 관하여 Von deutscher Baukunst>에서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기 훨씬 전에 형성적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이때에 참되고 위대한 예술일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속에 형성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 이 성질은 생존이 안전하게 되자마자 활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성격 예술이 유일한 참된 예술이다. 루소 및 괴테와 더불어 하나의 새로운 미학 이론의 시기가 시작 되었다. 그럼으로서 성격 예술은 모방 예술에 대해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 성격 예술을 그 참된 의미에서 이해하려면, 우리는 일방적인 해석을 피해야 한다. 모든 성격 예술 혹은 표현적 예술이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인 발로>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크로체는 오직 표현의 사실에만 관심을 가지고 , 그 양식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지 예술가의 직관이지, 이 직관을 특수한 재료에가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다. 크로체의 철학은 순전히 예술 작품의 정신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정신의 철학이다. 반면에 콜링우드는 "예술가가 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주어진 정동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과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다.우리들 각자의 발성과 몸짓은 모두 예술 작품이다"라고 말한다. 이 모든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표상이며 해석이다. 여러가지 형상의 관조와 창조에 몰두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 자신의 쾌락 혹은 <비애의 기쁨>의 향락에 파묻혀 있는 예술가는 감상가가 된다.

 

다른 모든 상징 형식처럼 예술도 단지 기존의, 주어진 현실의 재생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생활에 대한 객관적 견해에 이르게 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현실의 발견이다. 언어와 과학은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확인하고 도 결정 짓는 두 가지 주요 과정이다. 언어와 과학은 현실의 간략화요, 예술은 현실의 강렬화이다. 언어와 과학은 하나의 동일한 추상 과정에 의존하고 있으나, 예술은 계속적인 구체화의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은 과학과 같은 종류의 개념적 단순화와 연역적 일반화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의 성질이나 원인을 추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물의 형상에 대한 직관을 준다. 그것은 참되고 순수한 발견이다. 예술가는 자연 형상들의 발견자이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러한 특수한 임무와 특별한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볼 줄 안다>라는 말로 회화와 조각의 목적을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 감각 경함의 대상을 수천 번 만났으나 그 형상을 한번도 <보지>못하였을 수 있다. 누가 우리에게 그 물리적 성질이나 효능이 아니라 그 순수한 시각적 형상과 구조를 말해보라고 하면, 그렇게 수천번 만나본 것인데도 우리는 어리둥절해 한다. 이 간격을 메우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태양은 날마다 새롭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과학자의 태양에 관해서는 참되지 않을지 모르나 예술가의 태양에 관해서는 타당한 말이다. 우리들의 미적 지각은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지각보다 훨씬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며 또 더욱 더 복잡한 질서에 속한다. 감각 지각에 있어서 우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들의 공통적이고 불변하는 성질을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미적 경험은 이것과 비교가 안 될만큼 풍부하다. 그것은 일상의 감각 경험에서 깨우쳐지지 않은채로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다. 예술가의 작품에서 이 가능성이 현실태가 되며, 또 표면에 나타나 일정한 형상을 가지게 된다. 사물의 양상이 이 무진성을 밝혀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최대한 특권의 하나요, 또 가장 깊은 매력의 하나이다.

 

화가 루드비히 리히터는 객관적 시각이란 없으며 형태와 색채는 언제나 개인적 기질에 의하여 파악된다고 결론지었다. 에밀졸라는 예술 작품을 <기질을 통해서 본 자연의 한 구석>un coin de la nature vu a travers un temperament)이라고 정의한다. 위대한 예술작품의 직관에 몰두해 있을 때, 우리는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 사이의 분리를 느끼지 않는다. 칸트는 그가 <미적 보편성>이라 부른것과 우리의 논리적 및 과학적 판단에 속하는 <객관적 타당성>사이에 선명한 구별을 두고 있다. 칸트는 우리들의 미적 판단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것은 대상 그대로가 아니라 대상의 순수한 관조라고 극력 주장한다. 미적 보편성이란 미의 빈사가 특별한 한 개인에 제한되지 않고 판단 주체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예술 작품이 개개의 예술가의 변덕과 광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이 보편적 전달성을 가지지 못하고 말 것이다. 예술가는 현실의 몇몇 측면을 선택하는데, 이 선택의 과정은 동시에 객관화의 과정이다. 일단 우리가 그의 조망(perspective)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그의 눈으로 세계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전에는 한번도 이러한 독특한 빛 속에서 세계를 보지 않았던 것과 같다. 예술작품의 덕택으로 그것은 지속적이고 영구한 것이 되었다. 이것들은 새롭고 또 보다 깊은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열정적 감정의 순간적 폭발이 아니라, 깊은 통일과 연속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돌연히 우리는 이 그림자들의 배후를 보기 시작하며 또 하나의 새로운 현실을 보기 시작한다.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술은 자연 현상의 표면에 집착하지만, 그 자체의 깊이, 그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표면적 현상 속에 합법성의 성격, 조화적 비례와 완전, 미의 극치, 의미의 존업성, 열정의 높이를 인지함으로서 이 표면적 현상들의 최고의 계기들을 결정화 한다.

그것은 현실의 해석으로 개념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해석이며, 사고를 매개로 한것이 아니라 감각적 형태를 매개로 한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우리에게 미학이론을 준적이 한번도 없다. 햄릿이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연극의 목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예나 이제나 이를테면 거울을 자연에다 대고, 선악을 있는 그대로, 시대상을 또한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다."그는 <볼 줄 안다>가 예술가의 최고의 성품이라고 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옳게 여겼을 것이다.

 

예술작품의 고요함은, 역설적인 말이지만, 동적인 고요함이지 정적인 고요함이 아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인간 영혼의 움직임들을 그 모든 깊이와 다양성으로 보여준다. 예술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어떤 단순한 혹은 단일한 정동적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 자체의 동적인 과정으로 대립하는 두 극, 환희와 비애, 희망과 공포, 희열과 절망 사이로 쉴새 없이 흔들린다. 우리들의 열정에 미적 형식을 준다는 것은 이 정동을 자유롭고 적극적인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작품에서 열정의 힘 자체는 형성적인 것이 된다. 반대로 관객과 청중의 입장에서는 관객이라 하더라도 그저 수동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예술 작품이 나오게 된 창작 과정을 어느정도 반복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없이 우리는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예술은 이 모든 창작의 고통과 폭력, 잔인함과 흉악등의 그 모든 정동을 자기 해방의 수단으로 전환시키고 그리하여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도달할 수없는 내적 자유를 우리에게 준다.

 

비극적 예술과 희극적 예술사이의 구별은 필연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관습적인 것이다. 그것은 예술의 내용과 동기들에는 관계가 있으나, 예술의 형식과 본질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플라톤은 오래전에 벌써 이 인위적이고 전통적인 경계선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미가 사물의 직접적 속성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반드시 인간 정신에 대한 관계를 내포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미학 이론이 인정하는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흄은 그의 논문 <취미의 표준에 관하여>(of the standard of taste)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미는 사물들 자체에 잇어서의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사물들을 관조하는 정신 속에만 있다."예술적인 눈은 사물의 인상을 받아들이고 기록하는 수동적인 눈이 아니다. 미의식은 형태들의 동적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요, 또 이 생명은 거기 상응하는 우리들 자신 속의 동적 과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악될 수 없다.

 

주관적으로 어떤 직관이 형성되는 시점에서 이제 다시는 사실들의 직접적인 현실속이 아니라 바야흐로 공간적 형상들의 리듬속에, 색채의 조화와 대조 속에, 빛과 그늘의 균형속에서 즉 이와같이 형상의 동적인 측면에 몰두하는 곳에 심미적 경험이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