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Writing/예술이란...

페티시 Fetish / 윌리엄 피에츠 Willam Pietz

louis... 2015. 3. 11. 02:05

윌리엄 피에츠 ( Willam Pietz ) 

페티시즘을 중심으로 문화적 담론을 분석하는 비평가. 그는 정신분석학과 정치 경제학 비판을 연결하면서, 페미니즘과 역사, 인류학,정치철학, 문화비평, 그리고 예술학 등 다양한 학제간 교차연구를 통해 문화의 쟁점을 읽어내도록 페티시즘의 문제를 다룬다. <인류학과 미학저널 Journal of Anthropology and Aesthetics>에 세차례에 걸쳐 연재된 페티시의 문제1(1985), 페티시의 문제2(1987), 페티시의 문제3(1988)시리즈는 윌리엄 피에츠와 에밀리 엡터에 위해 편집되어 <문화적 담론으로서의 페티시즘Fetishism as Cultural Discourse 1993>으로 출간되었다.

 

 

페티시 Fetish / 윌리엄 피에츠 Willam Pietz

최초의 페티시즘 이론은 순수 예술과 미적 판단이 인간 경험의 자족적인 영역을 형성한다는 신념을 합법화한 것이었다. 실제로 '미학 aesthetics''페티시즘Fetishism'18세기 중후반 무렵 유럽의 지적 문화 풍토에서 점차로 수용된 신조어들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샤를 드 브로스 Charles de Brosses에 의해 만들어진 '페티시즘'이란 용어는 그의 저서 <주물 숭배 의식>을 통해 1757년 프랑스의 지적 공동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미학과 페티시즘은 ;감각적인 물질성 sensuous materiality과 지각하는 정신 사이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주목하여 주관적인 과정과 신념의 효과를 이론화시킨 철학적 시도였다. 페티시즘 이론은 종교적 미신에 대한 계몽주의적 비판의 일부로 형성되었고, 미학이론은 예술작품과 미적 감정을 별개의 계몽된 경험의 영역을 형성하는 것으로 정의하기 위해 성공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기서 계몽된 경험의 영역이란 신성한 사물과 종교적인 감정에 적합한 영역으로부터, 그리고 실용적인 사물과 경제적인 추론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영역을 말하는 것이었다. 흄의 <종교의 자연사 The Natural History of Religion>(1757)의 견해를 받아들인 드 브로스는 '인간에게 당연한 은유'의 표현이라고 페티시를 설명했다. 원시인들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 불확실한 사건의 결과를 걱정하면서 우연히 공포와 욕망이 깃든 물질적인 사물에 집착했고, 물리적인 인과 관계의 진정한 과학적 이해를 결여한 채,몹시 갈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도록 미지의 사물을 그들이 숭배하는 신으로 의인화 시켰다. 이러한 유물론자들의 종교는 철저히 비초월적이고 비보편적인었다. 페티시즘의 계몽주의 이론은 계몽되지 못한 초기과정이라 칭할 수 있는 이론이었고, 문명화의 현실원리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것은 주체의 욕망과 객체의 인과관계 사이를 구별하지 못했고, 나아가 합리적인 의도와 인간의 목적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사회의 도덕적인 영역, 그리고 기계적인 법칙과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통제받는 자연의 비인격적인 영역을 구별하지 못했다. 의도적인 합목적성을 욕망 충족에 의해 우연히 결합된 물질적인 사물의 결과로 본것처럼, 물신 숭배자는 인간 우위의 목적론을 물질 세계의 결과로 생각함으로써 그것을 신비화시켰고, 도덕적 자율성을 향한 모든 능력을 기계적인 의식절차와 교리적인 신념의 결과로 생각함으로써 사회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1790)을 페티시즘 문제의 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칸트에게 자기-비판적인 정신의 미적 능력이란 주체가 가진 합목적성과 생물학적인 유기체와 같은 자연의 목적론적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객체의 목적 사이를 감각적인 경험안에서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계몽된 정신에 의해 미적 판단의 명료한 능력을 인지하게되는 것은 현실성 있는 주체의 욕망과 목적을 실험적인 관찰을 통해 알게된 객체의 시스템과 더이상 혼돈하지 않는 자의식을 입증하는 것과 같다. 물신숭배자의 미적 분별력의 결여는 도덕적 자율성과 진정한 자아를 행할 수 없는 무능력의 증거가 된다.

 

콩트에 따르면 진정한 사회과학을 성립하는 것은 신학과 형이상학의 위선적인 방법들을 과학적인 실증주의로 대체할 뿐만 아니라, 위선적인 신의 종교를 진정한 인류의 종교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했다. 인류는 자신이 꿈꾸는 과학적 유토피아를 읽히기 위해서 '순수한 페티시즘'을 위한 그들의 원초적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콩트는 주장했다. '순수한 페티시즘'이란 새로운 과학적 통찰력을 우연적인 관계로 생각할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절대적 헌신을 향하여 자기 구축적이고 고착화된 충동을 표현 할 수도 있는 자발적인 열정적 추측의 상태를 말한다. 콩트에게 이러한 순수한 페티시즘에 의해 보완된 과학적 실증주의는 진정한 종교, 즉 인류와 물질적 삶의 종교를 나타냈다.

 

19세기 말을 향해가면서, 존경할 만한 사회학자들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시 종교의 이론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토템미즘totemism이었다. 일반적인 토테미즘 이론은 신과 신성한 사물의 진리란 사회, 즉 제도적인 형태에 의해 표현되고 강화되면서 나타난 집단의 집합적인 존재라고 지적했다. 뒤르켐Emile Durkheim<종교적 삶의 근본적인 형태들>(1912)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페티시즘'이란 사람들이 매우 단호하고 자율적인 개인이라고 스스로에게 품고있는 환영의 그림에 대한 집단적인 재현의 부차적인 효과로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가 언급한 '동시대의 글 가운데 아마도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반미학적인 입장 antiaesthetic theoretical position prehaps most forcefully expressed in contemporary writing'이란 문구를 떠올리게 된다. <문화생산의 장 The Field of Cultural Production>(1993)에서, 브르디외는 예술에 대한 관습적 견해를 인간 본성에 근거한 주관적 행동의 특별 유형에 접합한 자족적인 영역으로 기각해버리고, 과학적인 지혜의 시초는 '예술 그자체가 페티시'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예술 그 자체가 페티시'란 지속된 신념이 제도적으로 구성된 사물을 뜻한다. 페티시로서 예술을 이해하는 과학적 접근은 작품자체를 생산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모든것이 예술과 같다는 신념이 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www.youtube.com/channel/UCsL-txmMzwHZypmcSb0jpYA?view_as=subscri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