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Style / 에른스트 곰브릭 Ernst. J. Gombrich
양식 Style / 에른스트 곰브릭 Ernst. J. Gombrich
에른스트 곰브릭 ( Ernst. J. Gombrich,1909 ~ 2001 )
오스트리아 빈출신 미술 사학자. 1936년 영국으로 이주. 런던 위버그 인스티튜트 Warburg Institute 에서 연구 활동 1959~1976년 위버그 연구소 미술사 연구소장을 지냈으며 런던대학,하버드대학, 코넬대학에서 강의 활동.1950년에 지금까지출간된 미술에 관한 책중 가장 유명한 <서양 미술사 The Story of Art >는 서양 미술사 개론중의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이를 통해 곰브릭은 모든 미술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의 목적 의식을 표현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곰브릭은 <서양 미술사>외에도 <곰브릿 세계사>,<예술과 환영>,<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등 20여권의 관련 저서를 남겼다.
어떤 행위나 작품이 독특하게 인식되는, 혹은 그렇게 인식되어야만 하는 방식을 '양식 style'이라고 한다. 현대 영어에서 양식이라는 단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 단어가 넓은 의미로 정의된다는 뜻이다. '양식'이란 용어는 수식하는 형용사를 모두 제거한 규범적 의미에서 공연이나 작품을 '평범한'사건 혹은 대상으로부터 탁월한 상태로 만드는 바람직한 일관성 도는 현저함을 뜻하는 찬사로 사용될 수 있다.
의도와 묘사 Intention and Description
'스타일style'이란 단어는 '역법'이란 의미로, 영국에서 그레고리오력이 소개되고 수용되는 기간동안에 날짜를 계산하는 대안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용법과는 별도로 '양식'이란 단어를 행위자나 제작자보다 사용자가 구별할 수 있는 행위나 작품의 어떤 유형으로 분별없이 적용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중대한 결과를 야기했다. 언어학자의 체계적 정리를 인용하자면, '표현력에 관한 전체 이론의 중심축은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화자나 저자가 다른 형태의 표현을 선택할 수 없다면 양식에 관한 질문은 불가능하다. 넓은 의미에서 동의어synonymy는 양식에 관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어원 Etomology
'양식style'은 로마인들의 필기도구였던 라틴어 스틸루스stilus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작가의 저술방식의 특징을 서술하는데 사용되었다.그리스와 로마 수사학 교사들의 저술은 여전히 양식의 다양한 가능성과 범주들 사이에서 가장 세심한 분석들을 제공한다. 단어의 효력은 계층내에서 사회적이며 정신적인 함축의 의미를 띤 품위있는 용어 혹은 변변찮은 용어의 올바른 선택에 달려있다. 최상의 문체style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전 작가들의)탁월한 모범을 부단히 탐구하는 방법외에는 없다. 음악, 건축과 시각 예술에도 적용되는 이러한 원칙들은 18세기까지 비평 이론의 토대를 형성한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양식'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는 증가하지만 이 용어는 시각 예술에서만은 서서히 적용되었다. 이 단어가 18세기에 미술사 용어로 확립된 것은 대체로 빙켈만의 <고대 미술사>(1764)를 통해서였다. 그는 그리스 양식을 그리스식 생활방식의 표현으로 다루었으며, 헤르더Herder등으로 하여금 중세의 고딕 미술도 같은 방법으로 논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시대 양식period style의 관점에서 미술사의 기초를 닦았다. 19세기에 건축과 국정에 나타난 일련의 '역사적 양식historical style'은 우리를 이 세기의 양식에 더 민감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우리 시대의 양식인가?라는 의문을 집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논의중에 양식과 기술의 진보간의 관계가 점차적으로 대두되었다.
기술과 유행 Technology and Fashion
행위나 작품의 독특한 방식은 사회적 요구와 부합되는 한 변함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변화를 만드는 두가지 주된 위력은 기술의 향상과 사회적 경쟁이다. 우월한 방식에 대한 지식은 불가피하게 작품의 양식을 변화시킨다. 그렇지만 양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실은 의례ritual와 의식ceremony이라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오래된 방식이 여전히 존속된다는 점이다. 확실히 고대 양식의 풍부한 가치는 독특한 상황을 유지하는 방식과 평범한 기술적인 관습간의 거리를 더 넓히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진보가 신속해질 수록 수용과 거부사이의 간격은 더 커질 것이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의 '기능적 양식'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의 구현을 보장한 것은 과학 기술의 명성 이었다.'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이미지가 주로 의식과 관련된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 변화가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집트와 비잔틴의 보수적 양식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예술 양식의 영역에서조차도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보다 우수한 기법을 도입하자 수용만큼거부가 강력한 표현의 수단이 되면서 긴장 상태가 야기되었다.
실제처럼 보이는 그림이라는 미술의 주된 목적을 성취하는 방식이 4세기 그리스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터득된 이후로 이에 대한 반작용은 특히 더 중요해졌다. 이러한 일단의 발명들이 미술의 본질적인 목적에 일조하기보다는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명료함을 훼손시키는 기술적 기교의 부적절한 과시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양식에 관한 철학의 원천으로, 이는 서양의 전통에서 비평의 온전한 발전에 핵심적인 것이다. 수단과 목적의 완벽한 조화는 고전 양식의 특징으로서 수단이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한 시기를 원시 혹은 고대로 간주하며, 수단과 공허한 표현의 과시에 기어드는 것은 변질된 것으로 본다.
양식의 발전과 붕괴 Evolution and Disintegration of Style
어떠한 가치 평가를 받든간에 확실히 매너리즘과 바로크는 원숙함, 아마도 지나친 원숙함에 도달한 모든 미술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논쟁이 있었다. 모든 선택이 차례대로 시도된 '최후;의 단계에서 또 다른 복잡한 상황을 점점 더 정신없이 추구하다보니 양식이 '탈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떤 비평가에게 최고 수준의 예술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비평가에게는 변형의 시초인 듯 보이기도 한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미술 양식이 복잡한 세잔은 자신을 신세대 미술의 개척자로 보았다. 선행하는 발전과 새로운 출발, 혹은 (적재적 비평가에게는)가장 교활한 변형의 정점을 대표하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항상 이러한 모호성을 고수한다. 회화발전의 내밀한 논리의 관점에서 양식의 분석이 분명한 결과를 내놓았다면 이는 타당한 역사적 법칙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비평가들 덕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하인리히 뵐플린은 특정 거장에게 사용 가능한 예술적 수단에 주목하기 위해 이 체계를 이용했으며 아무리 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논쟁에 대비해 어휘를 개발했다. 예술 작품이 계속되는 일련의 발전 과정 위에 있다고 볼때 우리는 작품의 창조자가 선대의 예술가들에게서 배운 것과 그 자신이 변형시킨것, 그리고 차례대로 후세대가 어떻게 그를 이용했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아커맨Akerman은 이러한 양식적 결정론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으로 인해 감정가의 직관력의 근거가 되는 양식의 형태론에 대한 탐구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식과 시대 Style and Period
양식을 집단 정신의 표현으로 보는 이러한 접근법은 헤겔의 <역사철학 Philosopy of History>(1837)으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를 상징하는 자의식 내의 절대자Absolute의 현현으로본 헤겔은 각 시기를 특정 국가내에서 형상화된 과정의 한 단계로 이해했다. 한 국가의 철학,종교,법률, 관습,또는 기술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정신Spilit의 발전 단계를 반영할 것이고 이러한 양상은 공동의 중심축, 즉 시대의 본질을 지적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고딕 건축양식이 스콜라 철학 혹은 중세 봉건주의와 본질적으로 같은 사고 방식을 표현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지 이 하나의 원칙을 입증하는 것뿐이다. 미술에 관한 19세기 역사학 방법론은 ( 그 여파로 20세기에도) 주로 헤겔의 일원론적 통찰력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 형이상학의 한층 곤혹스러운 측면을 제거하려는 일련의 시도로 기록될 수 있다.이 모든 이론들이 인과 관계를 추구하는 순수과학 탐구와 구별되는 점은 선험적 특징 때문이다. 뵐플린은 '양식을 설명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역사적 맥락안에 양식을 놓아두고 그 시대의 다른 요소들과 조화롭게 대화를 나누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와 예술가 모두가 이 전체론적 신념을 폭넓게 수용했다는 점이다.
문화연구에 적용되는 문구중에 '발톱이 사자를 보여준다 Ex ungueleonem이라는 것은 오래되고 고전적인 꼬리표이다.
양식의 인상학 Stylistic Physiognomies
문화 전체주의에 관한 논리적인 주장은 포퍼K.R.Poper의 <역사주의 빈곤 The Povert of History>(1957)에서 꼼꼼하게 분석되고 반박되었다. 어떤 집단의 활동의 한 측면과 다른 측면간에 필연적인 연관성은 없다.이른바 예술에 '표현된'국가적 특성들은 확실히 한층 더 현저하게 시대정신에도 적용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타의 징후들이 '불필요한' 잔재 혹은 예측인 반면 하나의 특성이 이른바 한 시대의 '정수essence'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증거의 재해석은 항상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임시변통의 설명들은 단 하나의 가설을 강력하게 뒤받침하기보다는 무효화한다.
예술적 기호의 판단 The diagnostics of Artistic Choice
요즘은 예술에 있어서의 취향이 천박한 사람과 교양있는 사람 또는 보수적인 사람과 진보적인 사람도 서로 비슷하다. 예술적 기호란 그 자체로 그 사람이 전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타낸다. 혁명기에 유럽의 정치 생명이 보수적 우익과 진보적 좌익으로 양극화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로부터 예술 운동은 예외없이 줄곡 정치적 신조와 일치했다. 쿠르베가 노동 계층을 모델과 주제로 선택한 것은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나타내는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회의 분화가 다양한 예술속에 반영될 수는 없지만, 정치적 충성도로 그 소속을 읽어낼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양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두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번째는 사회적 논리의 '피드백 feedback'특성에 관한 것이다. 대중에게 호소하는 획일적 양식이 이론상으로 필수 불가결한 일이 되었다. 두번째 교훈은 아무도 이 게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사회적 관점을 무시하기란 어렵게 된다. 악의 없는 주제가 정치적 중요성을 띄게되면 아무도 혼자서는 빠져나올수가 없다. 이 두가지 소견은 사회 과학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양식을 논의할 것을 강조한다. 항상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관찰자는 그가 관찰하는 내용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형태론과 감식안 Morphology and Connoisseurship
양식의 독특한 특성은 확실히 전통을 지속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흡수 동화한 특정한 관습을 채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특질들 중 일부는 쉽게 인식되는 반면에, 다른 특질들은 포착하기가 한층 어렵다. 양식의 문제에 접근하는 한가지 확실한 방법은 예술가나 장인이 작업하는 범위의 한계를 주시하는 것이다. 양식은 어떤 활동은 금지하고 다른 활동은 효과적이라고 권하지만. 이 체계 안에서 개인에게 허용되는 자유의 정도는 시합에서처럼 최소한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