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벽지 Queer Wallpaper / 제니퍼 도일 Jennifer Doyle
퀴어 벽지 Queer Wallpaper
제니퍼 도일 Jennifer Doyle
제니퍼 도일 Jennifer Doyle은 UC리버사이드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 문학과 문화연구, 시각 연구, 현대 미술사, 젠더 연구등의 분야의 전문가이다.
제니퍼 도일은 우연히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M.J.'S라는 게이바에 우연히 들렸다가 앤디 워홀의 1978년 실크스크린 시리즈 중 하나인 <성기 부분들 Sex Parts>라는 판화를 발견했다고 이야기하면서 본 글을 시작한다. 이 판화는 M.J.'S 뒤편 벽에 걸려있었으며 이 작품은 다른 '게이 미술품'들과 함께 술집의 벽에 걸려있었다. 제니퍼 도일은 미술이나 비평을 묘사하는데 있어 '퀴어'라는 단어를 쓸때 우리는 분명 섹슈얼리티가 미술에서 갖는 중요성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꼭 그 작품의 작가를 '게이'라 아우팅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하자면 퀴어시각 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게이 남성들과 레지비언들이 제작한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선상에서 사고를 한다는 것은 미술이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미술이 누구를 칭하는지, 그 미술이 어떤 맥락에서는 가시화되고 어떤 맥락에서는 보이지 않는지, 그리고 미술이 가능케하는 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모든 미술의 성정치학, 미술이 세계에 대해 어떤 것들을 말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술'이라는 분류는 어떻게 규정되는지 등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보는것을 의미한다. 그녀에게 워홀의 작품이 반 직관적으로 퀴어한 이유는 그 이미지가 묘사하는 대상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걸려있는 장소, 그리고 그 장소가 가시화하는 것들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의 표현을 빌자면, 워홀이라는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남자 게이'이지만, 맨디 머크Mandy Merck는 '워홀이 게이임이 아무리 공공연한 사실이었던들, 워홀의 영화들<나의 매춘부>, <외로운 카우보이>,<블로우 잡>이 제아무리 게이한들, 그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신전이 시선은 놀라우리만큼 비퀴어했다고 말한다. 이는 조금이라도 섹시하다 해석될 수 있는 그 어떤 형태의 언급으로부터 단호히 차단된것만 봐도 그러하다'고 언급했다고 전한다. 동성애자들이 미술사 분야에서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한들(예컨데 작가, 비평가, 컬렉터, 큐레이터 로서)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는 여전히 이 분야의 공식적 경계 바깥에 위치한다. 퀴어 주제들(예컨대 게이 포르노에 대한 앤디워홀의 애착, 잭스미스Jack Smith나 캐롤리 슈니만 Carolee Schneeman과 쉐릴 듄Cheryl Dunye의 영화들이 보이는 성적 급진주의, 로버트 라우센버그 Robert Rauschenberg나 래리 리버스 Larry Rivers, 제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작품에 숨어있는 퀴어 내러티브, 혹은 하모니 하몬스와 같은 레지비언페미니스트 작가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충동)에 애착을 갖는 우리들에게는, 퀴어 섹슈얼리티가 미술사의 공식 기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된는 것이 뭐랄까, 우리랑 안어울리는 술집에 들어갈때의 기분을 안겨준다.
비평 퀴어화하기
1960년 말에 이르러서 미국과 서유럽에서 동성애자들이 성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움직임을 형성했으며 동성애 혐오에 대항하여 집단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미술에서 우리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동성애자라 밝히는 작가과 관객을 보게되며 동성애자의 정체성, 그리고 게이 작가임이 갖는 의미 뿐 아니라 호모에로틱 연대와 정체성 표현의 역사를 탐구하는 큐레이터들을 보게 된다. 1980년대에는 에이즈 위기가 동성애 혐오에 대항한 전투에 새로운 차원의 절박함을 더해 주었다. 논문뿐 아니라 현대미술 내부, 그리고 주변에서 '퀴어'라는 단어가 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주로 동성애 혐오적 모욕의 언사로 쓰이던 일상 언어의 맥으로부터 '퀴어'를 회복시킨것은 1980년대 후반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들이었다. 특히 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과 일하던 운동가들이 적극적이었는데 , 이들은 집회에서 '우리는 여기있다, 우리는 퀴어하다, 너희가 익숙해져라 ! Were Here, We're Queer, Get Used to It!과 같은 구호를 외치곤 했다. 에이즈가 작가, 미술계, 그리고 현대 지성계에 미친 특정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으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섹슈얼리티나 미술과 정치에 대한 많은 글을 촉발했던 원동력과 정치적 헌신 역시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에이즈 확산에 대한 정부와 대중의 무관심의 근저에 깔린 동성애 혐오는, 우리로 하여금 반-동성애 혐오 프로젝트가 단순히 중요한 일일뿐만 아니라 생사와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에이즈 위기가 지성인들에게 제기한 과제, 즉 당대의 절박함을 글에 담을것을 강조하면서 버랜트와 워너는 퀴어 비평이 갖는 양면성을 가리킨다.
<우리가 받아 마땅한 워홀 얻기>에서 더글라스 크림프는 퀴어비평내에서 개인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 간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잭 스미스와 워홀의 예술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인 게이 정체성을 반영하거나 언급하여 현재 나의 정체성을 승인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성적 정체성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거부하고 그에 반기를 들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에게는 이것이 바로 '퀴어'의 의미이며, 섹슈얼리티의 표준화 아방가르드 족보의 역사적 구상화에 대항하기 위해 요즘의 우리가 필요로하는 의미라고 밝힌다.
크림프는 퀴어 비평의 주요 주제 중 하나를 다시 주장한다. 그는 퀴어 비평이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확고한 구분을 분명히 표현하고 생산하는데 주력하는 대신 성적 주체들을 특정 '타입'의 일원으로 규정하여 생산해내는 보수적인 관행에 대행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식들을 (소설이든, 사진이나 영화, 퍼포먼스의 형식이든) 퀴어 예술로서 고민할 것을 주창한다. 또한 (로버트 라우센버그나 제스퍼존스, 앤디워홀의 경우처럼)'고전'의 범주 내로 흡수된 퀴어예술과 반면 (잭스미스의 영화나Tribe 8혹은 The Butchies등의 레즈비언 펑크 밴드 퍼포먼스들, 그리고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론 애시의 퍼포먼스와 같이) 고집스럽게 '언더그라운드'에 어무는 퀴어 예술을 둘러산 학문적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을 환기 시킨다. 이러한 작가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들의 '퀴어함'이 단순히 성적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술을 제작하는 방식, 그들이 만드는 예술과 사람들 간의 관계 안에도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브 코소프스키 세드윅의 1993년 에세이 <퀴어, 그리고 현재>에서는 "우리는 의미들이 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지점들을 필요로했고, 우리는 그런 매혹적인 지점들에 애정을 투자하는 법을 배웠다"라는 글이 나온다. 이 의미는 세드윅이 표현했듯 '종교,국가,자본,이데올로기,가정,권력과 합리성의 담론'이 모두 '가족'이나 '국가'같은 단어의 단일 조작으로 통합되는 순간들, 즉'모든 기관들이 하나의 목소리의 말을 하는 순간들에 놓였을때 우리가 그에 대항하여 분투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창의적인 계보 : 퀴어 미술사 가시화 하기
퀴어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로는 이브 세드윅의 1985년 작품 <남성들 사이에서>가 있다. 남성들 사이의 간계에 대한 사회적 규율과 동성애 혐오 간의 역학에 대한 세드윅의 분석은 이 책을 출판하느데 있어 유물론적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게이,레즈비언,퀴어페미니스트 커무니티의 많은 작가들과 지적 지도자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기도 했는데, 그들의 정치적 급진주의는 비단 가정과 친밀함의 형식을 새로이 설정하는데 한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자-남성우월주의자에의 자본적 투자에 대한 비평을 발생시키는것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퀴어 예술과 가장 깊이 연계되는 작가들 중 일부에게 있어 그들의 에토스ethos의 '퀴어함'을 구축하는 일은 예술계의 소비 문화와 출세제일주의에 대한 그들의 반감과 직접적으로 연꼐된다. 우리가 흔히 퀴어예술제작과 관련하여 떠올리는 이름의 상당수가(잭스미스나 앤디워홀부터 이탈리아 작가이자 영화감독, 시인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까지)자본주의와 소비문화를 자신의 작업 주제로 삼았다. 특히 데이비드 워나로빅David Wojnarowicz은 기업의 탐욕과 동서애 혐오, 그리고 에이즈 위기간의 관계를 자신의 글과 예술을 통해 탐구한바 있다.
작가들이 과거와 소통하고 과거를 재-작업하는 양상을 엘리자베스 프리먼은 '시간적 드래그 temporal drag'라고 칭한바있다. '시간적 드래그'라는 용어는 '드래그'라는 단어와 젠더 교차적인 퍼포먼스간의 연계점, 그리고 '드래그라는 용어가 역행,지연,그리고 현재에 대한 과거의 끌어당김과 같은 요소들과 갖는 관련서'을 모두 활용한 결과물이다. 더 나아가 프리먼은 시간적 드래그에 대해 이는 '우리 고유의 역사적 순간을 초월하는 사회좌표들과의 확고한 동일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시간적 미끄러짐과 환영을 상정하여 현재를 과거로써 채우는(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는) 퀴어 프로젝트들과 긴밀히 연관된 것으로는 1990년대와 90년대에 활동하던 작가들, 즉 예술계를 강타한 에이즈의 충격과 씨름하던 작가들을 특징짓는 요소인 '극실한 상실감'을 다룬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 작가들로는 데이비드 워나로빅,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밍유엔 마, 아이삭 줄리엔등이 있다.
벽면 텍스트
제니퍼 도일은 과거 LA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최고의 앤디 워홀' 회고전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결과적으로 그 전시는 워홀의 작품 세계 중 상당 부분, 다시말하면 시각적으로 성적인 모든 작품들을 그의 커리어에 대한 '회고'에서 배제시킴으로해서 '앤디는 정말 언제난 헐리우드를 사랑했다'라는 메세지만을 전하는 전시를 본 저자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회고한다. 아울러 공교롭게도 전시 예술을 논하는 상업 자본주의적 연설 장소의 위치에는 워홀의 거대한 모택동 초상화 바로 밑으로서 정치적 아이러니를 보여줌으로서 그 전시를 기획한 미술과과 시공무원의 인식 능력을 지적하였다.
이같은 조합의 경솔함은 워홀의 작품을 무에 대한 실존주의적 수행으로 보는 그 전시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한다. 이와 같은 시각은 미술관들이 워홀을 '비게이화'할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로서 이러한 '비게이화'효과는 미술관이 작품들로 하여금 '스스로 입장을 전달하게'하고자 한다는 명복하게 전시장 벽면에는 아무런 텍스트로 붙이지 않았다는 사실로서 극대화 되었다.
우리는 이 문제가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어떤 작품들이 미술관과 갤러리에 걸리고, 저널이나 잡지, 신문에 실리는지를 결정하는 경제적 압박과 정치적 압력은 몇몇에게는 단순히 압도적일 뿐 아니라 위협적이기까지 한다. 몇몇에게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작업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단순한 직업적 고민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어느날 작가는 우연히 동성애자인 친구와 함꼐 게이바인 M.J'.S바에 우연히 들렸다가 뒤쪽 벽면에 걸린 워홀 작품을 발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것이야말로,' 즉 생활속으로의 미술의 통합이야말로 퀴어예술의 핵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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