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로서의 미술관 The Art Museum as Ritual / 캐롤 던컨 Carol Duncan
캐롤 던컨( Carol Duncan ) : 미국 미술관 역사분야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푸코와 부르디외를 계승한다고 여겨지는 그의 연구는 특히 미술관학을 정치,사회학적 시각에서 해체하였고, 사회가 가진 실제적 패러당미이 작동하도록 수행하는 미술관의 역할을 드러내었다. 현재 뉴저지 럿거스주립대학 예술 대학원 명예교수로 재직주이다. 저서로는 1993년 <미학의 권력 : 미술 비평사에 대한 논고 The Aesthetics of Power : Esseys in the Critical History of Art>, <계급의 문제 : 존코튼 데이나,진보적인 개혁, 그리고 뉴웍미술관 A Matter of Class:John Cotton Dana,Progressive Reform and the Newark Museum>등이 있다.
의례로서의 미술관 The Art Museum as Ritual / 캐롤 던컨 Carol Duncan
미술관은 언제나 사원이나 궁전과 같은 의례가 행해지는 이전의 기념물과 비교되어 왔다. 실로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가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미술관을 궁전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디자인하였다. 만약 박물관의 파사드가 궁전이나 신전을 모방해왔다면 그것은 단지 근대적 취향이 형식적인 균형미와 그들 건축이 가진 위엄을 본뜨고자 해서이거나 지나간 시절에 가졌던 믿음이나 권력을 현재의 문화예술과 관련지으려는 바람에서 비롯된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의 문화는 교회,신전,사원과 같은 종교적인 건축물을 미술관,법원,정부정사와 같은 세속적인 장소와는 다른 종류로 구분한다. 각각의 장소는 서로 상반되는 진리와 연관되어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이분법을 이룬다. 이원론은 교회의 영향력과 권력을 붕괴하려는 계몽주의적 기획에 이데올로기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18세기 후반에 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법제화되었고, 미술관은 세속적인 지식영역에 결정적으로 귀속된다. 보존 과학, 미술사,고고학 등의 과학과 인문학이 그 안에서 실천된는 것은 물론 공동체의 공식적인 문화적 기억을 보존한다는 지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안의 세속/종교라는 측면에서 '의례'와 '박물관'은 상반적인 위치에 있다. 인류학자들이 논쟁하듯이 우리의 소위 세속적 문화란(심지어 의례와는 상반된 것이라 할지라도)의례적 상황과 사건으로 가득차있다. 우리는 또한 미술관을 통해서 객관적 지식이 진리의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문화적 경험의 이데올로기적 힘을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을 통제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재현하는 것, 그리고 그 공동체가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과 진리를 통제한다는 바로 그 의미이다. 이는 또한 공동체안에서 개인의 상대적인 입장을 정의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미술관들이 오래된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와 닮아 있다는 주장은 이들이 가진 구체적 건축 양식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의례를 위한 무대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허쉬흔 미술관의 푯말은 방문객에게 의례적인 활동과 행동거지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세하게 알려준다.19세기 영국의 정치가는 미술관 공간이 가진 의례적 성격과 그리고 거기서 보내는 시간이 일상과는 달라야 함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의례 형식과 공통점을 가진다. 매리 더글라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의례는 틀을 제공한다. 구별된 시간과 공간은 특별한 종류의 기대, '옛날 옛적에'라는 구절이 반복될 때 환상적인 동화의분위기를 설정하는 것과 동일한 기대를 조장한다.
'리미널리티 Liminality는 의례와 관련된 용어로 미술관을 방문할때 갖게되는 일종의 조심성Attentiness-통과 의례에서 전이의 단계-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수용적 태도는 예술품 앞에서 가장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빅토르 터너 Victor Turner에 따르면, 통상적인 사회적 행동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유예될 수 있는 민속적인 의례들처럼, 이러한 문화적인 상황은 개인들로 하여금 일상의 사회관계와 실리적인 공간으로부터 물러나와 자신과 자신들의 세계를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바라볼 숭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의례에 대한 세련되고 일반적인 관념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미술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것이라고 상정하는가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하였다. 더불어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 제르멩 바젱Germain Bazin에 의하면 '미술관은 시간이 유예된 사원'이다. 방문객들은 '문화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갖게되기를 기대하며 입구로 들어서고 이로써 '그 자신의 본질과 힘을 직관적으로 알게되리라는 환상'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스웨덴의 저자 고란 쉴트Goran Schildt는 미술관은 '우리로 하여금 일종의 삶과의 전쟁...자신의 자아와 일상의 고통에 갖힌 상태로부터 풀려나와 '독립되고 시간성이 배제된 고귀한 관조의 상태를 추구하도록 하는 무대'라 했다. 쉴트는 예술을 바라보는 19세기적 태도를 '종교적인 요소, 종교의 대체물'이라 지칭했다. 지금가지 방문객이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주목하는 점, 그리고 미술관이 제공하는 특별한 시공간적 본질을 통해 미술관 경험의 의례적인 성격을 논의하였다.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는 어떤 행위를 재연하도록 계획된 장소가 된다. 이 장소는 일종의 행위를 위해 디자인된 장소이다. 이러한 미술관에서 의례를 행하는 자는 바로 관객들이다. 리미널리티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미술관을 퍼포먼스의 현장으로서 여기는 생각은 미술관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신시내티 미술관 디렉터였던 필립 라이스 아담스Philip Rhys Adams는 미술관을 연극 무대 장치로 비교하였다.
마지막으로 의례의 경험은 최종 목표, 끝을 가진 사고이다. 그것은 변환적인 성격을 가진듯이 보인다. 미술관 지지자에 의하면 미술관 방문자들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고 돌아가거나 영혼의 양식을 얻얻거나 되찾는다고 한다.
예술 작품을 공공의 장소에 한데 모으는 유일한 이유는....이들이 일종의 고상한 행복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 한다.
잠시 동안이나마 정글처럼 복잡한 삶에서 한적한 장소를 찾아낸 것처럼, 우리의 삶을 떠안을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고
하늘에 대한 기억을 가지면서우리는 재충전된 느낌을 받는다.
- 케네스 클라크 경 Sir Kenneth Clark -
18세기가 지나가면서 비평가와 철학자들은 점점 더 시각적인 경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예술 작품이 관람객들을 정신적, 도덕적, 감성적으로 변모시키는 힘을 가졌음을 피력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이 발견된 시각적 경험이 가진 측면은 철학과 예술 비평에서 광범위하게 연구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미학 이론이 발전했던 시기에 공공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대한 관심 또한 커져갔다. 실로 미술관의 증가는 철학적 창안, 즉 예술 오브제를 둘러싼 미학과 도덕적인 영향력의 당연한 결과 였다. 철학의 범주에서 임마누엘 칸트의 <판단력 비판 Critical Judgement>은 미학에 경도된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가장 기념비적인 표현중의 하나라 하겠다. 칸트는 인간의 미적 판단 능력을 분리, 독립 시켰으며, 이를 실질적인 논리와 과학적인 이해라는 다른 정신 능력으로부터 구분하였다. 18세기가 예술과 미적 경험을 비평과 철학의 주용 논점으로 삼아 정립하려 했던 것 그 자체가 세속적인 것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려 했던 폭 넓고 일반적인 경향이다. 미학의 발명은 성스러운 영역에서 세속적인 시간과 공간으로 정신적인 가치를 전환시켰다. 달리 말하자면 미학자들은 일상의 세계로부터 물러나온 상태를 인식하면서 통상적인 삶이 정화되는 시간과 공간으로의 여정인 리미널리티의 조건에 철학적인 공식을 제공하였다. 철학에서 리미널리티는 미학적인 경험으로 구체화되었고 일종의 전이나 계시로 인도하거나 만들어내는 윤리적,논리적 이탈의 순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갤러리나 미술관의 등장은 미학적이 숭배Cult를 행할 수 있는 그들만의 의례적인 구역을 제공하였다.
이것이 18세기 미술관에 대해 모두가 합의한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부터 어떤 이들은 이미 미술관 특유의 분위기가 진열된 오브제의 의미를 바꾸어놓을수 있음에 대해, 오브제가 원래 있던 장소와 이전의 용도로부터 떼어놓게 됨으로써 오브제를 예술 작품으로 재정의하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괴테는 드레스덴 미술관을 처음 방문하고 열정적인 묘사를 쓴지 삼십년이 지난후, 나폴레옹이 다른 나라로부터 들여온 보물을 조직적으로 모아놓고 이들을 루브르 박물관에 전리품으로 진열한데 대해 불쾌해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그도 미술관이 가진 오브제를 예술품으로 틀 짓는 능력, 다른 종류의 의례적인 주목을 하도록 하는 바로 그 지점은 오브제제가 가진 다른 의미 혹은 이전에 가졌던 의미를 무효화 하거나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다.
19세기 대부분의 기간동안 국제적인 미술관 문화는 관객들을 윤리적,사회적,정치적으로 계몽하고 향상시킨다는 개념, 즉 공공 미술관으로서 일차적 책임에 충실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이러한 이상Ideal에 대한 근본적인 경쟁 상대인 미학적인 미술관이 우세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는 이 새로운 이상이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들의 원칙을 가장 자세히 기술하고 영향력을 발휘한 저서인 벤자민 아이브즈 길먼Benjamin Ives Gilman의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이상적인 미술관 Museum Ideals of Purpose and Method>에서 길먼은 예술작업이 일단 미술관에 진영되면 오직 한 가지의 목적, 아름다운 물건으로 보여지는 것만을 위해 존재하게된다. 그는 미술관의 최우선 책임은 예술작품을 바로 그렇게 미학적인 관조를 위해 전시하는 것이지, 고고학적인 정보나 역사적인 예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미학적인 묵상은 심오할 정도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으로 관객과 예술 사이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관객은 스스로를 작가의 이미지로 상상하며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의 관념대로 생각하고 그의 감정을 느끼려 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를 수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심오한 정신적인 계시로 인한 즐거운 감정, '절대적이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라 했다. 길먼이 그렇게도 매료되었던 미술관의 이상은 20세기를 압도할 만한 호소력을 사진 것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술관은 그가 미술관의 취지라고 보았던 것과 동일한 강도의 몰입감을 유도하도록 디자인된다. 근대 혹은 현대 미술관들은 과거로부터 온 불멸의 영혼들과의 영적 교감이라는 목표를 확실히 해 오고있다. 인류학자인 에드먼드 리치Edmund Leach는 모든 문화가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그것의 결과인 죽음을 모순시키려는 상징적 노력을 해 왔음을 인식했다. 그에 따르면 부활, 회춘, 영혼의 회귀, 과거의 지속과 같은 주제는 과거의 시간이 되돌아오는 듯한 상징적 구조로 죽음을 대체함으로써 죽음을 부정하려 한다. 관객들이 과거의 의미심장한 순간들을 다시 살아보려는 의례적 장소로서 미술관은, 리치가 묘사했던 종류의 상징적 전략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세쟈르 그라냐Cesar Grana는 '근대의 설치는 사실에 가까운 사원으로서의 미술관'이라는 비유를 만들어 내었고 제르맹 바젱은 <미술관 시대The Museum Age>에서 어떻게 근대적 설치가 의례적 장소로서 미술관의 구조 확립을 도왔는가를 냉처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오브제를 분리된 공간에 설치하고 조명을 비추는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물건처럼 보이는 물건들에 시선을 집중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설치는 방문객들을 현재로부터 물러나와 정신적인 여정으로 이끌어 영구한 가치를 간직한 세계로 가도록 한다. 이 논쟁을 더 발전시켜보면, 미술관이라는 리미널리티적 성격을 가진 공간에서는 모든 것(소화기, 온도계, 습도계 등)이 예술이 될 수 있다. 이것들이 비워진 벽면에 분리되어 놓여 미술관 공간에서의 '미학하는 눈aesthetizing lens'으로 보았을때,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져 진열된 것들만큼 흥미로우며 그것들과 전혀 달라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