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ㅣ Friedrich W. Nietzche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ㅣ Friedrich Wilhelm Nietzche
Friedrich Wilhelm Nietzche (1844~1900) : 현대철학과 현대문화전반의 고전적 인물! 그의 철학의 영향력은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의 문학, 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음악, 회화, 심지어 건축영역에까지 이르고 있다. 기존의 고정 관념을 포함한 모든것을 파괴해버리는 망치를 든 철학자의 모습을,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긍정의 말을 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시대의 철학자 . .
만약 우리가 모기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파토스를 가지고 하늘을 날고 있으며 자신의 내면에서 움직이는 세계의 중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성이 자연내에서 차치하는 우월성이 얼마나 가련하고 무상하며, 얼마나 무목적적이고 자의적인가...?
자부심이 가장 강한 인간인 철학자는 우주의 눈들이 사방에서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행위와 사유에 맞춰져있다고 생각한다. - 인식의 가장 큰 효과는 착각이다.
개체보존을 위한 수단으로서 지성은 자신의 주된힘을 위장을 통해 전개한다. 이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위치를 모르고 흡사 호랑이 등위에서 꿈을 꾸며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은 궁핍과 권태때문에, 사회적으로 그리고 무리를 지어 실존하고자 하기 때문에 평화조약을 필요로 한다.
정황이 이렇다면 진리를 향한 충동은 도대체 세계의 어느곳에서 나온것인가?
언어는 모든 실재들에 상응하는 표현인가? 낱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경자극을 음성으로 모사한 것이다. 그러나 신경자극으로부터 우리의 외부에 있는 하나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은 이미 근거율을 그릇되고 정당하지 않게 적용한 결과이다. 얼마나 자의적으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며, 얼마나 일방적으로 한 사물의 특징을 선호하는 것인가?
신경자극을 우선 하나의 영상으로 옮기는 것 첫번째 비유. 영상을 하나의 음성으로 만드는 것! 두번째 비유. 그리고 그때마다 영역을 완전히 건너뛰어, 전혀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
언어의 발생은 논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무튼 사물의 본질에서 유래하지는 않는다.특히 개념들이 형성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모든 개념은 동일하지 않은 것을 강압적으로 동일하게 만듦으로써 생성된다. 어떤 나뭇잎이 다른나뭇잎과 전혀 같지 않은 것이 확실하지만, 나뭇잎이라는 개념은 이와 같은 개별적 차이들을 임으로 단념함으로서, 즉 구별짓는 차이들을 망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확실하다. 이제 이 개념은 자연속에는 마치 많은 나뭇잎들 외에 '나뭇잎'이라는 것. 즉 하나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일깨운다.
"나뭇잎들의 진실성" - 우리는 진실성이 뜻하는 본질적 특성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은 것을 지움으로써 동일하게 만들어 지금은 진실한 행위라고 표시하는 개별화되고 동일하지 않은 수많은 행위들로부터 비의적인 특질을 끄집어내어 진실성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유동적인 한무리의 비유,환유,의인관 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시적, 수사학적으로 고양되고 전용되며 장식되어 이를 오랫동안 사용한 민족에게는 확고하고 교의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적 관계들의 총계이다. 진리는 환상들이다.
언급한바대로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수백년동안의 습관에 따라 이루어진 거짓말, 인간은 바로 이 무의식성을 통해, 즉 망각을 통해 진리의 감정에 이른 것이다. 이는 의무감정에서 진리와 연관된 도덕적 충동을 일으키고 자신의 행위를 이성적인 것으로 설정하여 추상화의 지배에 예속시키며 위계와 정도에따라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의 질서를 건립하는 것, 법칙과 특권과 종속과 경계 설정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것이 가능해진다.
개념들의 주사위 놀이 안에서 '진리'가 뜻하는 바는 - 모든 주사위를 표시된 대로 사용하는것, 즉 주사위의 눈을 정확히 읽고 올바른 제목을 달고 카스트 질서와 카스트 계급의 순서를 절대 어기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흐르는 물 위와 같은 움직이는 토대위에다 무한히 복잡한 개념의 대성당을 쌓아 올리고 그 속으로 신을 추방한다.
저 원초적 은유 세계를 잊은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체라는 것을, 그것도 예술적으로 창조하는 주체라는 것을 망각함으로써만 어느정도 평온과 안정과 성과를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에게 자연법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연법칙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 알려져 있지 않으며, 오직 그 효과를 통해서만, 즉 우리에게 다시금 관계로서 알려져 있는 다른 자연법칙들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큰 감명을 불러일으키는 별의 운행과 화학적 과정의 그 모든 법칙성은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사물들에 붙여놓은 특성들과 일치하므로 ,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경탄해마지 않는 것이다.
개념들을 건축하는 작업에는 본래 언어가 그리고 나중에는 학문이 참여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덮쳐오는 무서운 다른 종류의 진리들로 부터의 보호할 능력, 비유를 형성하고자하는 충동 - 한 순간도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의 기초적 충동 - 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영역과 하상을 스스로 찾아나서고 그것을 신화와 예술 속에서 발견한다.그것은 새로운 전용과 비유와 환희를 세움으로써 개념들의 제목과 방을 끊임없이 혼동시킨다.
니체는 본문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과 지성에 대한 역사적 관념을 여지 없이 깨트리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세웠던 진실이라는 개념을 통한 지성이라는 보호막이 사실은 얼마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하는 것이었는지를 냉철히 비판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이 주인이었으며, 종이 주인을 모시듯 기만했던 지성을 버리고 자유분방한 축제를 즐기며 직관에 이르는 길을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개념과 추상들에 의해 인도되는 인간은 이 추상들로부터 행복을 쟁취해내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통해 불행을 막기만하는데 반해, 직관적 인간은 문화의 한가운데 서서, 악을 저지하는 것 외에도 이미 자신의 직관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해명과 명랑과 구원의 결실을 얻는다.
# 49 (On Color / Multi #2), 1991
Multi - color neon 13.5 X 396 X 4.4 Cm
1965 년에 오하이오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조셉 Kosuth는 공공 기념물과 박물관 전시 그리고 설치에 있어서 예술 내에서 언어의 의미와 역할을 탐구 하는 실험적인 개념 설치물을 만들기 시작 했다. Kosuth의 작품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발생 이론에서 영향을 받아서 드로잉과 자기 지시적 작품을 제작한다.
'뒤샹'이후로 예술가들의 본질적 가치는 그들이 얼마나 예술의 본질에대해 질문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정해진다고 Kosuth는 이야기 했다.
본 작품에는 단어에 입혀진 일곱가지의 색이 보여진다. 색이란 무엇인가? 색이란 모든 실재들에 상응하는 표현인가? 우리가 그 색을 일컽는 네이밍은 올바른가? 니체식대로 말하자면 네이밍발생은 논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무튼 사물의 본질에서 유래하지는 않는다. 언어 이전에 인간이 직감적으로 인지가능했던 자연물의 다양한 색에 인간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무리를 지어 실존하고자 하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각각의 언어를 지시했고 사회적으로 이를 공통적으로 사용 오늘날에는 하나의 약속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색의 진실은 무엇인가? 과연 레드는 진정 레드이며 블루의 진실은 무엇인가? 언어는 모든 실재들에 상응하는 표현인가? 언어는 무엇인가?우리는 이작품을 통해 진리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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