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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화에서의 돈 ㅣ George Simmel

louis... 2014. 12. 25. 22:50

 

현대문화에서의 돈    George Simmel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1858 ~ 1918 ) :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베를린 대학교에서 역사학,철학,(민족)심리학 등을 공부. 1881년 박사학위 논문<칸트의 물리적 모나르론에 따른 물질의 본질>  발표

학문적 관심이 대단히 폭 넓고 다층적이며 학제간 벽을 넘어서고 있음. 사회과학적, 사회학적 문제의식을 가진 철학자로서 저술. 짐멜은 모든것은 늘 변화, 발전하고 있으며 모든것은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방법론적 근본 원리와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 문제틀은 '삶과 형식'의 문제로서 인식하고 삶의 과정 자체가 대립성과 이원성의 통일이므로 , 투쟁과 갈등의 원초적인 의미를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가이다.

                               

 

 

중세를 지나 근대의 시기는 인간을 자율적 존재로 만들었으며 인간에게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내적,외적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적인 삶의 내용들에 역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객관성을 부여했다. 기술, 온갖 종류의 조직, 그리고 기업과 직업은 점차 사물이 내재적 법칙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으며, 더이상 개별 인격체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는 마치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에서 점차 인간화된 특징을 벗겨내고 자연에 객관적 법칙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근대는 주체와 객체를 상호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었으며,그 결과 양자는 더욱 더 순수하고 완전하게 자체적인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런 분화 과정의 두 측면이 화폐경제에서 어떤한 영향을 받았는가를 서술하는것이 이 글의 과제이다.

 

화폐경제는 자연경제의 시대와 달리 인간과 일정한 특성을 지니는 사물 사이에 매 순간 완전히 객관적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특성이 없는 돈과 화폐가치를 삽입시킨다.

화폐경제는 개인과 소유의 관계를 일종의 매개된 관계로 만들어버림으로서 이 둘 사이에 거리가 생기게 한다. 이런 식으로 화폐 경제는 이전에 개인적 요소와 지역적 요소사이에 존재하던 밀접한 관계를 분리시켰다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원거리 소유의 형식은 사실 돈이 소유와 소유자를 분리시키는 동시에 결합시키면서 이들 사이에 끼어들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서 돈은 한편으로 모든 경제 행위에 미증유의 비인격성을 부여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정도로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고양시키게 된다.

쉽게 예를 들어 중세 시대의 길드는 단순히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결사체라기 보다는, 직업. 종교.사교. 정치적 그리고 여타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하는 삶의 공동체였다면 현대의 화폐경제는 이들의 공동체적으로 형성된 이해관계 색채들과 구속틀에서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

 

돈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모든 인격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절대적으로 유보한 채 개인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가르쳐주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합 형식이지만, 사실 가장 놀라운 문화 변동과 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현대인의 존재는 매순간 돈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창출된 수백가지의 결합관계들에 의존한다. 현대의 삶이 이렇듯 얽히고 유착되는 데에는 그 무엇보다도 노동분업이 큰 기여를 한다. 돈은 생산의 분업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결합시킨다. 이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동하고,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노동만이 비로소 개인의 일면적인 생산을 보충하는 광범위한 경제적 단위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 화폐임금의 경우 일반적으로 인간의 일면적인 성과만이 돈으로 지불되기 때문에 노동 분업이 촉진된다. 돈이라는 무특성의 추상적인 등가물은 오로지 인격으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인 개별 생산물에만 상응한다. 돈은 인간 전체와 그가 지니는 다양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노동 분업에 따른 성과에 대해서만 지불된다. 따라서 노동 분업은 화폐경제의 확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한다.

 

돈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매우 광범위하고 공통적인 수준의 이해관계를 창출했는데, 이것은 자연경제시대에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돈과 더불어 직접적인 상호이해의 토대가 마련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행위 규정들이 제정되었으며 이는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에 대한 표상이 성립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돈에 의해서 야기된 매우 밀접하고 불가피한 결합관계는 다른 한편 개체성과 내적 독립성의 폭을 매우 크게 넓히는 독특한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모두 특정인으로부터 훨씬 더 독립적이다. 바로 이런 관계가 강력한 개인주의를 창출한다. 다른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이 아니라 그들과 맺는 관계가 있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를 고려하지 않는 관계가, 그리고 그들의 익명성과 그들의 개체성에 대한 무관심이, 바로 이 모든것이 사람들을 상호소외시키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매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고유한 자아는 외적인 관계들로부터 물러나서 그 이전의 어느때보다 더욱더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차원으로 회귀하게 된다.

 

 

현대문화의 흐름은 일견 상충되어보이는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번째가 수평화,평등화,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까지도 동일한 조건하에 결합시킴으로서 더욱더 광범위한 사회영역을 창출하는 방향이라면. 두번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을 성취하고 개인의 독립성 및 인격형성의 자율성을 보존하는 방향이다. 이 두방향은 화폐경제에 의해서 유지된는데, 이는 한편으로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통용되는 매우 보편적인 이해관계, 결합수단 및 의사소통의 수단을 제공해주며, 또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현저한 인격의 보존, 개체성 및 자유를 보장해준다.

 

돈은 비천하다. 왜냐하면 돈은 모든것에 대한 등가물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개별적인 것만이 고귀하다. 다수가 동일하게 가진것은 그 가운데 가장 낮은 것과 동일하며, 따라서 가장 높은 것은 가장 낮은 것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진다. 모든 수평화는 바로 가장 낮은 요소의 수준으로 귀결되는데, 이를 가리켜서 "수평화의 비극"이라고 한다. 매우 특별하고 출중한 것을 가리켜 '돈으로 살 수 없는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부유한 계층에게는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체되기 때문에, 사물이 주는 독특하고 가장 개별적인 자극들에 대한 섬세한 감정들이 점점더 위축된다. 현대인의 다수는 일생동안 돈의 획득을 가장 소중한 목표로 추구해야하기 때문에, 모든 행복과 삶에 대한 모든 확실한 만족은 일정한 양의 돈을 소유하는것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표상이 생겨난다. 단순한 수단과 전제 조건이 심리학적으로 최종목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이와같이 수단이 목적에 의해서 압도되는 현상은 모든 고등 문화의 근본적인 특성이자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고등 문화는 원시적인 문화들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의도하는 바가 더이상 단순하고 명백하면서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서 달성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데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거대한 열망은 명백히 돈이 지니는 역량과 성공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그래서 돈은 원칙적으로 어떤 순간에도 추구할 수 있는 절대적 목표가 된다.그 결과로 현대적 삶은 동요하고 열광하며 유식이 없다는 특성을 보이는데, 돈은 이같은 삶에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를 달아준다. 이 바퀴는 결국 삶이라는 기계를 영구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돈에 대한 열망은 정착된 화폐 경제에서 인간의 영혼이 보여주는 항구적인 상태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는 돈이 바로 우리시대의 신이라고 사람들이 빈번히 탄식하는 모습을 주목한다.

신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심층적인 본질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다양성과 대립은 신을 통해서 통일성에 도달하게 되며, 또한 존재의 모든 낯섦과 화해 불가능성은 신에서 통일성과 화해를 발견한다는 이 이념으로부터 평화, 안전 그리고 모든것을 포괄할 정도로 풍부한 감정이 유래하는데, 이 감정은 신에 대한 표상 및 우리가 신을 소유한다는 표상과 결부된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돈이 자극하는 감정들은 이것과 심리학적인 유사성을 지닌다. 돈은 우리들에게 개별적인 것을 초월하도록 해주며, 돈이 지닌 전능을 마치 하나의 최고 원리가 지니는 전능인 양 신뢰하도록 하는데, 이 원리는 언제든지 개별적이고 비천한 것으로 전환 될 수 있다

 

작게는 돈이라는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현대인의 다른 여러 특성들이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화폐경제는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인 수학적 조작들의 필연성을 초래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수학적 규정, 측량 그리고 질적 가치를 양적 가치로 환원시키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확실히 더 충동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감정적인 이전 시대들에 반해서 이성적이며 계산적인 근대의 특성에 기여한다. 더구나 소액화폐의 증가는 동일한 효과를 지니며, 또한 화폐경제의 확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얻게되는 결과물인 돈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반면에, 다른 소유물들과 상태들은 더 개별적이고 질적으로 풍부하기때문에 실제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자체내에 그 근원을 보유하고 있다. 돈의 지배는 근대의 정신적, 사회적 문화를 중세와 고대의 그것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구분되도록 만든 위대하고 통일적인 삶의 과정이라는 커다란 조류에 합류한다. 돈에 대한 성찰은 경제적 삶의 구조가 시대의 정신적,문화적 상태에 실로 심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수 있다.

 

화폐제도는 결국 우리 문화의 모든 산물들을 촉진시키는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난 여러가지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보호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돈에 대한 저주받은 탐욕과 화폐제도에 의한 삶의 황폐화를 탄식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식이 그 근원에 더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 문화의 그늘진 측면들 뿐만 아니라 가장 우아하고 수준높은 측면과 화폐경제가 지니는 관계가 더욱더 명백하게 드러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Eric Fischl

 

    Untitled

      Hand painted collage with pigment inks and poured resin

      101.6 × 152.4 cm

 

 

 

 

 

 

 

 에릭피슬은 1948년 미국 뉴욕 출신으로서 피닉스대학에서 미술공부를 시작, 애리조나주립대학교,캘리포니아 미술대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는 신표현주의 대표작가중 한명으로서 성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화면과 관음증적 시각을 통해 성의 기회주의와 도덕적 불안등 미국 중산층 특히 여피족들의 도시적 삶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동시에 그 기저에깔려있는 현대인들의 고독감과 절망감을 표현하는 등의 '배드 페인팅 Bad Paintinf'의 연작을 통해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시선의 방향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리고 바쁘다. 비록 그들이 걸친것은 수영복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그들이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 즉 돈이 주는 혜택의 큰 수혜자들임을 직감할 수 있다. 현대인의 '비천한 신' 화폐는 그렇게 현대인들을 열광시키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개인과 개인의 단절을 요구한다. 돈에 의해서 야기된 매우 밀접하고 불가피한 결합관계는 강력한 개인주의를 창출한다. 다른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이 아니라 그들과 맺는 관계가 있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를 고려하지 않는 관계가, 그리고 그들의 익명성과 그들의 개체성에 대한 무관심이, 바로 이 모든것이 사람들을 상호소외시키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매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고유한 자아는 외적인 관계들로부터 물러나서 그 이전의 어느때보다 더욱더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차원으로 회귀하게 된다.에릭피슬은 현대인들의 단편적인 모습에서 그 내면의 실존적인 모습을  너무나도 예리하게 꼬집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