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와 정신적 삶 ㅣ George Simmel
대도시와 정신적 삶 ㅣ George Simmel
게오르그 짐멜 (George Simmel,1858 ~ 1918 ) :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베를린 대학교에서 역사학,철학,(민족)심리학 등을 공부. 1881년 박사학위 논문<칸트의 물리적 모나르론에 따른 무질의 본질>을 발표
학문적 관심이 대단히 폭 넓고 다층적이며 학제간 벽을 넘어서고 있음. 사회과학적, 사회학적 문제의식을 가진 철학자로서 저술. 짐멜은 모든것은 늘 변화, 발전하고 있으며 모든것은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방법론적 근본 원리와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 문제틀은 '삶과 형식'의 문제로서 인식하고 삶의 과정 자체가 대립성과 이원성의 통일이므로 , 투쟁과 갈등의 원초적인 의미를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가이다.
현대의 삶에서 가장 심층적인 문제들은 개인이 자기자신의 독립과 개성을 사회나 역사적 유산, 외적 문화 및 삶의 기술의 압도적인 힘들로부터 지켜내려는 욕구에서 유래한다. 현대 특유의 삶의 산물들에서 그 내면적 측면에 대한 질문, 즉 문화라는 신체에 담긴 영혼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구조들에서 삶의 개인적 내용들과 초개인적인 내용들 사이에 어떤 등식이 성립하는지, 그리고 개인의 인격이 외부의 힘들과 화해하는 적응 능력들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본 글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주 내용이다.
대도시에 사는 개인들에게 전형적인 심리적 기반은 신경과민인데, 이는 외적.내적 자극들이 급속도로 그리고 끊임없이 바뀌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은 차이를 본질로하는 존재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때그때의 인상이 선행하는 인상과 구분되는 차이에 의해 촉발된다. 이러한 심리적 조건들은 대도시의 거리를 걸을때나 빠르고 다양한 경제적,직업적,사회적 삶을 경험할때 발생한다. 따라서 대도시는 소도시나 시골의 삶과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후자에서는 감각적, 정신적 생활의 리듬이 더 느리면서 더 익숙하고 더 평탄하게 흘러간다. 이 부분에서 특히 대도시의 정신적 삶이 어떻게 해서 기분이나 정서적 관계에 더 의존하는 소도시적 삶에 비해 지적 성격을 띠게 되는지를 이해 할 수 있다. 그것은 소도시의 정서적 관계들이 정신의 더 무의식적인 층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꾸준하고 지속적인 습관들을 통해서 가장 잘 발전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대도시인들은 외부환경의 흐름이나 그 모순들에 의해서 삶이 뿌리째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방어 메카니즘을 만들어낸다. 대도시인은 그러한 외부환경에 대해 무의식에서 나오는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중에서도 가장 상층에 위치한 '오성'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지적인 반응을 보인다.
예로부터 대도시는 화폐경제의 본거지였다. 화폐경제와 이성의 지배는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양자는 사람과 물건을 취급함에 있어 순수한 객관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여기서는 흔히 형식상의 정의와 몰인정한 엄격성이 짝을 이룬다. 특히 화폐는 모든 현상들에 공통적인 것 즉 모든 성질과 특성을 단지 수량적인 문제로 평준화 시키는 교환가치만을 문제로 삼는다. 현대의 대도시는 거의 전적으로 시장을 위한 생산, 즉 생산자가 보지 못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고객을 위한 생산에 의해서 유지된다. 이렇게 되면 고객과 생산자 양측의 이해관계는 몰인정한 객관성을 띠게 되고 이성적 계산에 입각한 경제적 이기주의는 예측할 수 없는 개인적 관계 때문에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된다. 현대적 정신은 점점 더 계산적인 정신이 되어왔다. 실제 삶의 계산적 정확성은 화폐경제가 이룩한 것으로, 이는 전 세계를 계산 문제로 환원하고 세계의 모든 부분을 수학 공식으로 표현하려는 자연과학의 이상에 부합한다. 대도시 삶이 팽창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정확성, 계산 가능성, 치밀성은 대도시의 화폐 경제적 지성주의적 성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내용들에도 반드시 일정한 색채를 부여한다.
삶의 형식의 정확성과 치밀성으로 가장 비인간적인 구조를 만든 두요소가 있다.
하나는 "둔감함"이다. 아마도 둔감함처럼 절대적으로 대도시에 해당되는 정신적 현상을 없을 것이다. 둔감함은 대도시의 지성주의를 고양시킨다고 생각되는 신경 자극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대립적 형태로 밀려들기 때문에 생긴다. 둔감함의 본질은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 증세이다. 그렇다고 우둔한 사람에게처럼 그것이 전혀 지각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의 차이들이 지닌 의미나 가치, 나아가 사물 자체를 공허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둔감해진 사람에게 그러한 차이들은 모두 똑같이 침침하고 음울한 색조로 나타나며 다른 것보다 선호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두번째로는 "속내 감추기"를 들 수 있는데 인간 주체는 전적으로 자신을 삶의 이러한 존재 형태와 타협시키는 반면에, 그에게는 대도시에 대항하는 자기 보존 과정에서 이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성격의 사회적 태도가 요구된다. 만약 무수한 사람들과의 쉴 새 없는 만남에 대해서 매번 내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면 사람들은 내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어 상상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사정 때문에, 혹은 대도시 삶에서 스쳐지나가는 요소들에 대해 당연히 갖게되는 불신 때문에, 우리는 그처럼 속내 감추기의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대도시의 전형적인 이러한 두가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반감"이다. 반감은 잠재적 또는 실제적 적대심의 전 단계에 해당된다. 반감은 거리를 두면서 회피하도록 하는 태도를 가져온다. 이러한 태도가 없이는 대도시적 삶은 영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현저한 반감을 숨기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다시금 대도시의 훨씬더 보편적인 정신적 삶의 형식 외관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이러한 태도는 개인들에게서 일정한 방식의 자유를 어느정도 보장해주는데 , 다른 상황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은 없다.
이상에서 볼 수있듯이 삶의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내용과 형식들은 가장 개별적인 것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는 사실인데, 이러한 연관성은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타당성을 지닌다. 가장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은 모두 공통적인 단계를 지닌다. 다시말해 양자는 모두 결집력이 강한 조직과 집단을 공동의 적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과 집단은 자기 보존을 위해서 위부에 있는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는 자유롭고 개별적인 감성을 모두 자신의 적으로 보면서 그에 맞서 자신을 방어한다.
세계사적으로 집단의 크기와 인격의 내적,외적 자유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에 비추어 도시의 범위가 역동적으로 확장되면 이는 다음 단계에 그와 동일한 만큼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크기로 확장되는 발판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의 양이 매우 직접적으로 질과 특성으로 전환된다.대도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이처럼 그 기능의 크기가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또한 그러한 활동은 다시 내부에 영향을 주면서 대도시의 삶에 무게와 중용성과 책임감을 가져다 준다. 이것이 바로 존재가 표출되는 도시의 실제적 범위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즉 대도시의 크기에 대한 논리적, 역사적 보충물인 개인의 자유는 비단 이동의 자유라든가 편견이나 고루함의 제거라는 소극적 의미로만 이해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또한 자유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어디서든 각자 소유하고 있는 특별하고 비교될 수 없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표출된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자신의 본성을 따르고 있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때문에 그 표출된 본성이 다른 사람과의 본성과 구분될 때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어느 누구로도 대체 될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될 수 없을을 증명한다.
도시는 무엇보다 경제적 분업이 최고로 발달한 장소이다. 공급자는 수요자안에 언제나 새로운, 보다 독특한 욕구들을 불러일으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다 고갈되지 않은 수입의 원천을 발견하기 위해, 또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기능을 찾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전문화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성이 생기고 이는 나아가 일반 대중의 욕구를 분화, 세련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든다. 이로써 당연히 대중 내부에는 개별적 차이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특성들의 개별화로 이어진다. 도시는 크기에 비례해서 그런한 개별화를 촉구한다. 여기에는 명백히 일련의 원인들이 존재한다. 우선 대도시 삶의 차원에서는 고유한 인격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미와 에너지의 양적 고양이 어느 한도에 이르면 사람들은 질적 특수화를 시도하는데 이는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함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주위의 사회집단이 자신을 주목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대도시가 어떻게 해서 가장 개인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게되는 것인가의 가장 심층적인 이유는 현대문화의 발전은 객관정신이 주관정신보다 더 우세하다는 특징, 즉 다시 말해 언어나 법률, 생산기술이나 예술, 과학이나 가정용품들에 구현된 정신의 총합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비해 인간 주체들의 정신적 발전은 매우 불완전하며 점점더 뒤쳐진다는데 있다.이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분업이 늘어난 결과이다. 왜냐하면 분업은 개인에게 점점 더 일변적인 업적만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한 일면적 업적이 증대하게 되면 개인의 인격 전체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어쨌든 객관적 문화가 비대해지는 경우 개인은 점점 더 이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명백히 의식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인 삶에서 그리고 거기에서 느끼는 어렴풋한 전반적인 감정에서 개인은 이제 무시해도 좋은 존재로 격하된다.
한편으로는 관심을 끄는 자극들이 도처에서 밀려오고 시간과 의식의 충전을 통해 거의 움직이지 않아도 마치 강물에 휩쓸려가듯이 저절로 떠밀려가는 삶을 살게되면서 개인의 삶은 엄청나게 편리해 졌다. 다른 한편으로 삶은 점점 더 개인적인 색채들이나 비교 불가능한 특성들을 몰아내는 비인격적 내용들과 제공물들로 채워진다.더이상 모든 개인 안에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질적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이 개인적 가치를 유지하게 된다. 우리 시대의 외적,내적 역사는 개인 주체가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한 투쟁과 분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도시는 삶을 포괄하는 대립된 조류들이 동등한 권리로 만나고 전개되는 장소로서 위대한 역사적 형상물의 하나이다.

Adam Magyar, Array (Seoul), 2014, video Edition of 3
여행을 통해 그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도시적 삶을 기록하는 작가 아담 마자르는 특별히 제작된 카메라를 이용하여 도시와 공공장소속의 도보 혹은 공공 교통수단 속의 사람들에 포커싱을 맞추어 사진 작업을 한다. 아담 마자르속의 피사체는 도시속에 근거한다. 현대인 그리고 현대인의 삶이란 결국 타인과의 거리를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있으며 그 거리안에는 다양한 개체적, 실존적, 감각적 그리고 상대적 시각이 존재하는 감정적 공간이다. 멀리 떨어져서보면 도시적 삶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문화적 존재가 되는것에 대한 담론이 공존하는 이상 모든 개인 안에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질적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이 개인적 가치를 유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