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의 유형들 Pattern of Intention ㅣ Michael Baxandall
Michael Baxandall (1933~2008) : 르네상스 미술을 전공한 영국 출신의 미술사학자로서 런던대학교의 위버그 연구소 연구원과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 큐레이터로서 재직했으며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명예교수직을 역임했다.그는 몇몇 저서를 통하여 르네상스미술이 창조되고 대중들에게 이해된 문화적 여건들을 살펴보려 했고, '시대적인 눈'이란 개념으로 작가가 살았던 그 시대 상황의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조건들에 맞추어 미술작품을 설명하려 했다.
본글은 1985년 출판된 <의도의 유형들:그림에 관한 역사적 설명에 관하여 Pattern of I ntention : on the Historical Explanation of Pictures>라는 책의 서문으로서 미술비평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속성에 관해 통찰력있게 분석하고 있다
1. 설명의 대상들 : 묘사의 문장으로 모색된 그림들
우린 그림을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림에 관한 언급을 설명하거나 혹은 어떤 언어적 묘사나 특정 조건 아래에서 모색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그림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만약 '피에로 델라 프란치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해 '이 그림의 견고한 구도 firm design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피렌체에서 최근 수련한것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다'라고 다고 초보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첫번째로 '견고한 구도'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세례>란 그림에서 관심을끄는 한 측면에 대한 묘사임을 제안하는 것이며 두번째로 피렌체의 수련이라는 것이 그런 관심의 이유라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회화를 설명한 모든 내용들은 그 그림에 관한 정교한 묘사적 서술을 포함하거나 암시한다. 그러한 경우 그림에 관한 설명이라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면 어려울지도 모를 그런 방식으로서 보다 광범위한 묘사의 한 부분이 된다. '묘사description' 와 '설명explanation'이 서로 관통하고 있지만 '묘사'가 '설명'을 중재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혼돈해서는 안된다. 그림과 관계된 말과 개념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묘사'이고, 이러한 관계는 복잡하면서도 가끔 문제점이 일어난다.
2. 그림을 본 것에 대한 생각을 재현하기 위한 그림 묘사들
'묘사'는 사물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언어적 설명을 포함한다. '견고한 구도'가 어떤 의미에서 묘사라고 할 수 있지만, 마치 '그림'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사실 이말은 비전형적으로 분석적이고 추상적이다. 오히려 안티오크의 의회당에 걸린 그림을 4세기의 그리스인 리바니우스가 서술한 묘사가 더 사실적인 묘사일 수 있다. 리바니우스의 글은 우리로 하여금 그 그림을 명확하고 생생하게 시각화할 수 있도록 계산된 듯 보인다. 그것이 즉, '에크프라시스 ekphrasis'라고 하는 문학 장르의 기능이었고, 그래서 이런 그림 묘사는 뛰어난 에세이로 여겨졌다.
하지만 재현적이라고 여겨질 묘사는 진정 무엇인가? 묘사는 우리로 하여금 그림을 복제할 수 있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리바니우스가 점진적으로 이야기의 요소들을 명확하게 펼쳐내지만 그의 묘사만으로 그 그림을 재구성해 낼 수 는 없다. 리바니우스의 묘사를 읽으면서 일어나는 일은, 그게 무엇인지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기억 혹은 자연과 그림에 관한 과거 경험으로부터 어떤 이미지를 끌어와 우리 마음속에 구성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런 느낌대로 리바니우스가 묘사한 것에 대해 우리 모두 시각화된 이미지를 그려본다면 각자 서로 다른 이전의 경험에 따라서, 특히 우리가 마음에 품었던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서, 그리고 개인적인 조형적 성향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사실 언어는 어떤 그림에 대한 기록을 제공할 만큼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언어는 일반화의 도구이다. 미묘하게 차이가 나면서 질서가 잡힌 형태와 색깔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평면을 묘사하기 위해 언어가 제공하는 개념들의 창고라는 것은 오히려 엉성하고 동떨어져 있다. 동시적으로 감상이 가능한 평면, 즉 그림을 언어처럼 시간적으로 단선적인 매체로 다룬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수있다. 묘사와 감상행위, 그 둘이 잘 맞지 않음은 그림을 훑어보는 속도와 정돈된 단어와 개념이 들어서는 속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 명확하다.
확실히 본다는 것은 단순히 흝어보는 시지각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본다는 것에서 우리는 머리를 이용하고 머리는 개념을 이용한다. 우리는 처음 1초동안 그림의 전체적인 장면에 대한 인상을 받게된다. 그 다음에 다르는 것은 세부의 첨예화, 관계의 인식, 질서의 인지등이며 시지각적 흝어봄의 과정은 일반적인 흝어봄의 습관과 우리 주의를 끄는 그림의 특정한 단서들 모두에 영향을 받는다.
여기' 케네스 클라크'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를 설명하는 글에서 '구도는 견고하다'라는 묘사를 뛰어나게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이 글에서 케네스 클라크는 '견고한 구도'의 요소가 될만한 어떤 특성에 대한 분석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곧바로 기하학적인 뼈대를 인식하게 된다. 다시말해 몇 초 관찰해서 분석하면 그림의 체계가 수평으로 삼등분 수직으로 사등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수평적인 구분은 당연히 성령의 비둘기의 날개로 이루어진 선과 천사의 손, 예수의 허리에 두른 천, 그리고 세례 요한의 왼손으로 이루어진 선에서 이루어진다. 수직적인 구분은 분홍 옷을 입은 천사의 세로로 곧게 떨어지는 기둥과 같은 옷자락, 예수를 축으로 하는 중심선, 세례 요한의 등으로 이루어 진다. 이런 구분은 중앙의 정사각형을 이루고 이 사각형은 다시 삼등분과 사등분으로 나뉘는데, 이 사각형 안에 그려진 삼각형은 비둘기에 정점을 두고 낮은 지평선은 밑변이 되어 구도의 중심적인 모티브가 된다....
이 글을 보면 언어가 그림을 재현한다기 보다는 그림을 본 후의 생각을 재현한다는 점을 리바니우스의 묘사에서보다 훨씬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언어와 개념을 그림의 시각적인 관심요소와 짝을 이루도록 하고 싶다면, 묘사가 제공하는 것은 그림의 재현보다는 '그림에 관한 생각의 재현'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회화를 묘사에서 담아낸는 대로 설명한다'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자면, 일차적으로 우리가 그림에 관해 품었던 생각을 설명하고 오직 이차원적으로만 그림 자체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3.묘사적 단어의 세가지 유형
우리가 설명하고 싶은 대부분의 생각들은 간접적이라는 것이다. 그림들에 관해 우리가 생각하거나 말하는 보다 나은것들의 대부분이 그림 자체와는 다소 주변적인 관계에 있다. 만약 우리가 물질적인 대상을 묘사하는데 직접적으로 또는 중심적으로 관계하는 용어들에 스스로를 가둔다면,'커다란, 납작한, 패널에 사용된 물감들, 빨강, 노랑, 파랑, 이미지'등과 같은 개념들에 국한되고 말것이다. 그림이 실제로 우리에게 주는 그런 관심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정밀성이나 예리함은 중심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존재하기 때문에 천문학자가 별에서 '떨어져'바라보듯이 우리도 사물에서 '떨어져서'이야기하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비슷한 영향을 끼치는 다른 사물과 비교를 하고, 우리에게 그런 영향을 지니는 사물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한 추론을 제시하는 이 세가지의 주요한 간접 언어 사용 방식들은, 우리가 그림에 대해 취하는 세가지의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그림을 단순한 물리적 대상 이상으로 취급한다. 암암리에 우리는 그림을 화가에 의한 제작의 역사를 지닌 무언가로, 관람자에 의한 감상과정의 어떤 실재물로 간주한다. 이러한 생각의 한 유형은 구문론의 위계질서 속에서 다른 생각에 종속된다. 특히 추론적인 유형과 비교적인 유형 사이에서 모호함이나 융합이 일어난다. 용어의 실질적인 언급대상에서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견고한 구도'라는 생각을 <그리스도의 세례>에 적용했을때 그 구절은 원인에 대한 추론을 포함하는 생각외 된다. 그말은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강렬한인상을 주는 물건이 되도록 이끈 관점의 특질에 관해 추측함으로서 그림을 묘사한다.
4. 비평적 묘사의 실물 지시성 ostensivity
'구도'와 '견고함'은 실로 매우 광범위한 개념들이다. 미술 비평적 묘사에서 사람들은 이런 용어들을 절대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라 대상 혹은 특정 경우와 관련지어서 사용한다. 사실 사람들이 그림에 관한 중재적인 '묘사'로 다루고 싶어하는 단어와 개념들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생각해보아도 묘사적이지 않다. 미술비평이나 미술사에서 대상이 되는 작품이 현존하거나 혹은 복제품으로나 기억속에 남아 있거나, 아니면 똑같은 종류의 다른 유물로부터 얻은 지식에서 나온 대강의 시각적 자료를 이용할 수있을때 그런 말들의 의미를 결정하게 된다. 내가 '구도가 견고하다'라고 말하면 그 언급의 영향력은 다소 특수화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 그림의 흥미로운 점의 한 측면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보여주기 demostration'의 하나이다. '구도'라는 말로 나는 그 회화 작품의 한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고 '공고하다'라는 말로 나는 그 요소의 특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견고한 구도라'는 개념이 그 회화 작품의 흥미로움과 짝을 이룬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가지 요점이 제시된다. '견고한 구도'라는 말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에 나타나는 특성을 언어화한 대리물소서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서는 보다 정확한 의미를 띄게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에 대한 나의 언급이 정보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작품의 현존에 관한 보여주기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대체로 지시적tensive이다. 즉 언어와 사물 사이의 상호 교류적인 언급 체계로 인해 그 말에 정확성이 부여되면서 그 의미는 나 스스로와 청중들 모두에게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는 우리가 시도하려는 어떤 설명의 중재적인 대상인 동시에 언어적 '묘사'의 열린 구조이다. 또한 이 의미는, 놀라울 만큼 유동적이고 깨지기 쉬운 그런 대상물이 설명이라는 점을 내포한다.
현재의 요점은 용어의 지시적인 사용이 설명의 목적을 이상하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일차적으로 재현한 엄선된 언어적 묘사에 의해 강조된 것이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묘사는 일반화된 도구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는 추론적인 원인, 특색을 주는 효과,갖가지 비교 등으로 종종 간접적일 뿐만 아니라 그림 자체와의 상호 관계적인 상황에서만 사실상 이용하는 그런 의미를 띤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흥미를 언급하려는 의지는 이 너머에 존재한다.
Alex . K
a stare , 2014 C-Print photographs . 42 X 59.4 cm
삶과 예술의 경계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존적 사진 작업을 추구하는 알렉스 케이의 2014년 작업으로서 작가는 갤러리에서 우연히 마주한 작품과 관람객의 사이를 관찰한다. 관계성이 성립되는 순간, 작품은 관람객에게 관람객은 작품에게 유무언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관람객은 작품을 마주한채 일종의 흝어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아는 언어로서 작품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해하려고 한다. 미국 작가 재스퍼존스의 성조기..더이상 유명할 수 없는 네오다다의 대표작가의 대표작이다...바깥 세상에서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에게는 단지 하나의 작품으로서 처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확실히 본다는 것은 단순히 흝어보는 시지각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본 작품을 통해 그림을 본다는 것은 생각하는 과정의 재현임과 그림과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sL-txmMzwHZypmcSb0jp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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