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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의 근원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 진리와 예술 Das Wahrheit und die Kunst

louis... 2015. 1. 6. 21:16

예술 작품의 근원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   진리와 예술 Das Wahrheit  und die Kunst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 1976 ) : 독일 출신으로서 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자로 꼽히는 독창적인 사상가이며 기술사회 비판가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존재론자였으며 유럽 대륙 문화계의 신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근원은 예술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의 본질을 현실적 작품속에서 찾는다. 작품의 현실성은, 작품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am Werk sein,작품화되고 있는) 바의 그것으로부터, 즉 진리와 일어남으로부터 규정된다. 이러한 일어남을 우리는 세계와 대지 사이에서 투쟁하는 투쟁의 격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투쟁의 집결된 운동속에는 고요함이 현성한다. 자기-안에-고요히-머무르는 작품의 이러한 머무름은 여기에 근거한다.

 

작품의 작품적 성격은, 그것이 예술가에 의해 창작됨으로써 존재하는 창작된 존재(Geschaffensein)라는 사실에 존립한다. 작품의 창작된 존재는 오로지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부터만 명백히 파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술작품의 근원을 올바로 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언제나 염두에 둔채 예술가의 활동속으로 진입해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작품의 창작은 그 자체 수공업적 행위를 요구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너나할 것 없이 수공업적 활동 능력을 최고로 평가한다. 예술작품에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그리스인들은 수공업과 예술을 지칭하기 위해 테크네라는 동일한 낱말을 사용하였으며, 또 테크니네스(장인)라는 동일한 낱말로서 수공업자와 예술가를 지칭하였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이미 오랫동안 충분히 지적하여 잘 알려진 사실이다. '테크네'라는 낱말은 '앎'의 한 방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서의 '앎'(Wissen)이란, '보았음'(gesehen haben)을, 즉 넒은 의미에서의 '봄'(Sehen)을 뜻하며, 이러한 '봄'은 현존하는것(das Anwesende, 현존자)을 그것 자체로서 받아들이며 인지하는 '행위'(vernehmen)를 가리킨다. 앎의 본질은 그리스적 사유에서는 '알레테이아'에, 즉 존재자의 탈은폐(Entbergung)에 깃들어 있다. '알레테이아'는 존재자와 관계하는 모든 태도를 지탱하면서 이끌어준다. 현존하는 것을 그것 자체로서 은닉성으로부터 이끌어내서 고유하게 그것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비은폐성 가운데로 데려가는 행위(aus der Verborgenheit hereigens in die Unverborgenheit seines Aussenhens vor bringen)가 하나의 탁월한 산출행위인 한에 있어서, 이렇게 그리스적으로 경험된 앎으로서의 테크네는 존재자를 산출하는 하나의 산출행위(Her-vor-bringen)이다. 테크네는 결코' 만듦'(Machen)의 행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여기서의 산출행위란, 애초부터 존재자를 그것의 보임새로부터(von seinem Aussehen her)그것의 현존속으로 나타나게 하는 (vor - kommen lassen)행위이다. 그러나 이모든일은 '자생적으로 피어오르는 존재자'즉 '퓌시스'의 한가운데서 일어난다.

 

'작품 속에서는 진리의 일어남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미 도달된 작품의 본질경계에 대한 고찰로부터 우리는 '창작행위'를 '산출되는 어떤 것 속으로 출현하게 하는 행위'(das Hervorgenlassen in ein Hervor-gebrachtes)라고 특징지울 수 있다.'작품이 작품화된다'(Werkwerden)는 것은 진리가 생성되고 일어나는 하나의 방식이다. 진리는 환한 밝힘(Lichtung)과 이중적 은닉(zwiefache Verbergung)의 상호대립 속에서 그 자체로서 현성한다. 스스로를 내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물러서기도 하는 그런 존재자로서의 모든것이 거기 안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또 거기로부터 물러서기도 하는 그런 열린 장이 그 안에서 그때마다 어떤 방식으로 쟁취되는 그런 근원적-투쟁이 곧 진리이다. 진리는 오직, 진리자신에 의해 열리는 투쟁과 환한 밝힘과 은닉 사이의 맞선 대립(das Gegenwendige)이기 때문에, 그 진리에는 여기서 설립(Einrichtung)이라고 지칭되는 그것이  속하고 있다. '열려 있음의 환한 밝힘'과 '열린 장 안으로 설립함'은 서로 공속한다. 이 양자는 진리가 일어나는 동일한 하나의 본질(dasselbe eine Wesen des Wahrheitsgeschehens)이다.

진리가 자신에 의해 열려진 존재자 속에서 스스로를 설립하는 하나의 본질적인 방식이 '진리가 스스로를 - 작품-속으로-정립함'이다. 진리가 현성하는 다른 하나의 방식은 국가를 창건하는 행위(die staat grundende Tat,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행위)이다. 진리가 빛나게 되는 또다른 하나의 방식은, 단적으로 하나의 존재자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존재자 가운데 가장 잘 존재하는 것(das Seiendste des Seienden)으로 존재하는 그것의 가까움(Nahe)이다. 그리고 진리가 스스로를 근거짓는 (grunden,터 닦는) 또 다른 하나의 방식은 본질적 희생이다.

 

작품속으로 진리가 스스로를 설립함이란, 예전에 본 적도 없고 이후에도 결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그런 하나의 존재자를 산출함이다.

- 여기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독창성이 생겨난다. 이 산출은 이러한 존재자를 열린 장 안으로 세워놓음으로써, 가져와야 할 것이 비로소 그 안으로 출현하게 되는 그런 열린장의 열려 있음을 환히 밝힌다. 산출이 존재자의 열려 있음을-즉 진리를-제대로(고유한 방식으로) 가져올 경우에, 산출된 것은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산출행위가 곧 창작 행위이다. 진리는 작품속으로 자신을 바로 세운다(sich-richten). 진리는 세계와 대지의 상호대립 속에서 환한 밝힘과 은닉 사이의 투쟁으로서만 현성한다. 진리는 세계와 대지의 이러한 투쟁으로서 작품 속으로 바로 세워지기를 원한다. 투쟁은 단순히 쪼개져 갈라지는 어떤 균열이 결코 아니며, 그것은 투쟁하는 것 사이에 긴밀하게 공속하는 긴밀성(Innigkeit)이다. 이러한 긴밀성으로서의 균열(Rib,선)은 서로 대립하는것을 첨예하게 가르면서도 합일적인 근본바탕(Grund)으로부터 그것의 통일의 유래에로 모아준다. 이러한 균열이 곧 근본 균열(Grundrib,밑그림)이다 이러한 근본균열은 존재자의 환한 밝힘의 피어오름(Aufgehen)의 근본 특성들을 나타내 보여주는, 열린-균열(Auf-rib,초벌그림, 균열의 개현)이다. 이러한 열린-균열로서의 균열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을 파멸시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저마다 자신의 척도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이 상호대립적인 것을 이 둘이 서로 화합하는 합일적 윤곽(Um-rib,균열의 구성) 속으로 가져온다.

균열은 열린 균열과 근본 균열 그리고 다양한 균열들을 관통해 이것들을 전체적으로 짜엮는 윤곽(Durch-und-Umrib)의 통일적 결합이다.

균열 속으로 데려와 대지 속으로 되돌려 세워짐으로써 확립된 투쟁이 곧 형태(Gestalt)이다. 작품의 창작된 존재란, 진리가 형태속으로 확립되어 있음을 뜻한다.형태란, 균열이 안배됨(sichfugen,이어짐)으로서 구성된 전체적 짜임새(Gefuge)이다. 이렇게 안배된 균열은 진리의 빛남이 형태를 구성하는 선으로 이어진 것(die Fuge des Scheinens der Wahrheit)이다. 여기서 '형태'라고 말해지는 그것은, 작품이 건립되고 내세워지는 한에서, 작품이 그러한 것으로서 현성하는 그런 세움(Stellen)과 모아-세움(Gestell)으로부터 언제나 사유되어야 한다.

 

'창작된 존재가 작품으로부터 나타난다'(Hervorkommen)고 함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다(factum est,창작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작품 속에서 열린 장 가운데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 할 뿐이다. 즉 이것은, 존재자의 비은폐성이 여기서 일어나게 되었으며, 이렇게 일어나게된 것으로서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것은 곧, 그러한 작품이 분명히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오히려 없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작품의 창작된 존재의 생기(Ereignis)는 이러한 작품속에서 단순히 차후에 울려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이 이러한 작품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생기적 사실(das Ereigunishafte)이 작품을 자기 앞으로 내던져서 그것이 자기 주위에 내던져진 채 지속적으로 머물게 한다. 작품의 산출행위 속에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유일무이한 사실'이 제시되고 있다.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하게 함(sein lassen), 바로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작품을 참답게 보존하려는 작품의 보존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보존을 위해서, 작품은 자신의 창작된 존재 속에서 현실적인 것으로서, 다시말해 이제는 참답게  현존하는 작품으로서 스스로를 내어준다. - 여기서 하이데거는 작품속에서 일어나는 진리에 대한 터 있음의 참다운 머무름을 통해서만, 즉 진리에 대한 인간 존재의 본질 연관을 통해서만, 창작된것은 작품으로서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품을 보존함'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자의 열려 있음 안에 서-있음(Innestehen in der Offenheit des Seienden)을 뜻한다. '안에-서-있음은 일종의 앎(Wissen)이다. 이러한 앎과 원함은 실존하는 인간이 존재의 비은폐성 안으로 자기를 '탈자적으로 관여시키는 행위'(das ekstatische Sicheinlassen)이다.여기서 실존의 본질은 존재자의 환한 밝힘이 드러내는 본질적 분열(투쟁) 가운데로 나와 서-있으면서도 그-안에-서-있음(das ausstehende Innestehen im wesenhaften Auseinander der Lichtung des Seienden)이다. 원함이란, '작품 속으로 정립된 것'인 '존재자의 열려 있음'에게 자기를 내맡기는 '실존하는 초월'(das existierenden Ubersichhinausgehen)의 냉철한 결단성이다. 이와같이 내존함(안에-서-있음)은 자신을 법칙 가운데로 가져온다. '작품을 보존한다는 것'은 이와같은 앎이며, 그것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진리의 섬뜩함 속에 냉철한 자세로 내존하는 행위이다. 작품의 보존은 '서로를 위한 존재'(Fureinandersein)와 '서로 더불어 있는 존재'(Miteindersein)를, 비은폐성에 대한 연관으로부터 이러한 진리의 열린 장 가운데로 나와-서-있는 터-있음(Da-sein)의 역사적인 나와-서-있음(Ausstehen)으로서 근거짓는다.작품의 올바른 보존방식은 오직 작품 자체를 통해서만 비로소 함께 이루어지며 창작되며 예시된다. 보존은 그때그때 상이하게 미치는 앎의 범위와 지속성 그리고 앎의 명확성에 따라 여러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작품들이 단순히 예술적 향유만을 위해서 제공 된다면, 그 작품들은 아직 작품으로서 보존되고 있는것이 아니다. 작품의 가장 고유한 현실성은, 오직 작품이 작품 자체를 통해 일어나는 진리 가운데 보존될 경우에만, 그리고 이러한 보존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유지된다.

 

예술이 작품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이말은 곧, 예술이 작품에 본질적으로 함께속해 있는 창작자와 보존자를 그들의 본질에서 발원하게 한다는 뜻이다. 작품 속에서는 진리의 일어남이, 그것도 작품의 방식에 따라, 작용하고 있다. 예술의 본질은 작품-속으로의-진리의-정립(das Ins-Werk-Setzen der Wahrheit)이라고 규정되었다. 예술이란, '작품 속에서 진리를 창작하며 보존하기(die schaffende Bewahrung der Wahrheit im Werk)이다. 예술이란, 진리가 생성되며 일어나는 하나의 행위(ein Werden und Geschehender Wahrheit)이다.

 

예술은 진리를 솟아오르게(entspringen,발원하게)한다. 예술은 수립하는 보존으로서 작품속에서 존재자의 진리를 열어 놓으며 솟아오르게 한다(enspringen).어떤것을 열어놓으며 솟아오르게 함, 즉 수립하는 도약에서 어떤것을 그것이 유래하는 본질 유래로부터 존재 하는것으로 가져옴, 이것이 근원(Ur-sprung,원천적으로 솟아남)이라는 낱말이 의미하는 참 뜻이다. 예술 작품의 근원, 다시말해 창작하는 자와 보존하는 자의 근원인 동시에, 바로 이렇세 한 민족의 역사적인 터-있음의 근원이 곧 예술이다.

 

 

 

 

 

    

 

 

 

 

             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 (1898 ~ 1967)

             

             Readymade Bouquet. 1957

 

    

               oil on masonite

               167 x 129 cm

 

 

 

 

 

 

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 ( 1998~1967  ) : 르네 프랑수아 길랭 마그리트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벨기에 출신 화가. 1916년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시작, 미래주의롸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다. 이후 조즈쥬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본 작품에서 르네 마그리트는 존재자의 드러남과 동시에 이중적 은닉을 상호 대립적으로 현성시켜 보여준다. 그런 근원적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내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물러서기도 하는 그런 존재자로서의 모든것이 거기 안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또 거기로부터 물러서기도 하는 그런 열린 장이 표출된다. '열려 있음의 환한 밝힘'과 '열린 장 안으로 설립함'은 서로 공속한다. 이 양자는 진리가 일어나는 동일한 하나의 본질(dasselbe eine Wesen des Wahrheitsgeschehens)이다. 작품의 창작된 존재의 생기(Ereignis)는 이러한 작품속에서 단순히 차후에 울려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이 이러한 작품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생기적 사실(das Ereigunishafte)이 작품을 자기 앞으로 내던져서 그것이 자기 주위에 내던져진 채 지속적으로 머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