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Writing/예술작품이란...

예술 작품의 근원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 작품과 진리 Das Werk und die Wahrheit

louis... 2014. 12. 26. 15:51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 1976 ) : 독일 출신으로서 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자로 꼽히는 독창적인 사상가이며 기술사회 비판가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존재론자였으며 유럽 대륙 문화계의 신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예술 작품의 근원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   작품과 진리  Das Werk und die Wahrheit

 

작품은 어디에 귀속해 있는가? 작품이 작품으로서 귀속해있는 그 영역은, 오직 작품 자체를 통해 개시되는 그 영역일뿐이다.왜냐하면 작품의 작품 존재는 현성하고 있으며, 또 오직 이러한 열어놓음(Eroffinung,개시) 속에서만 현성하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예술작품, 예를들어 그리스의 신전은 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전을 통해 신은 신전속에 현존하고 있다. 이러한 신전으로서의 작품이 자기 주변에 <인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행로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삶의> 연관들을 모아들여 이어주는 동시에 통일한다. 이 열려진 연관들이 편재하는 넒은 터전(die waltende Weite dieser offenen Bezuge)이 이러한 역사적 민족의 세계이다.이러한 세계로부터 그리고 이러한 세계 속에서만 비로소 이 민족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 - 여기에서의 역사적 민족이란 존재의 부름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숙명적 모습을 자신이 삶의 터전에서 새롭게 회복하려는 역사적인 인간 존재로서의 터- 있음(Da-sein)을 가리킨다.

 

건축작품은 암반위에 고요히 머물러 있다. 신전은 우뚝 치솟아 있음으로써 허공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이게 한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이 작품의 확고부동함은 밀려드는 파도에 맞섬으로써, 자신의 고요함으로부터 밀물의 광란을 드러나게 한다. 나무와 목초, 독수리와 황소, 뱀과 귀뚜라미가 비로소 그것들 자신의 선명한 모습 속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그것들은 본래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은닉된 영역으로부터> 솟아나와 피어오르는 행위(Herauskommen und Aufgehen)그 자체 및 이러한 행위 전체를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퓌시스라고 불렀다. 이 퓌시스는 동시에, 인간이 근본적으로 거주해야할 그 바탕과 터전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대지(die Erde)라고 부른다. 대지란, 피어오르는 모든 것들의 피어남이 그러한 것으로서 '되돌아가(존재의 은닉속에 다시)간직되는 (zuruckbergent)'그런 터전이다.피아오르는 것 속에서 대지는 간직하는것(das Bergende, 품어주는 것)으로서 현성한다. 신전이 거기에 서 있음으로서 사물들에게는 비소로 사물들 자신의 모습을 밝혀 주고 , 인간들에게는 비롯 그들자신의 전망을 맑혀준다. 신이 작품으로부터 달아나지않는 한에서, 작품은 작품으로 존재하며, 도 이렇게 작품이 존재하는 한에서, 이러한 시야는 열려있다.

 

작품의 작품 존재는 어디에 존립하는가? 작품으로서의 작품은 무엇을건립하는 것일까? 자기 안에 우뚝 선채 작품은 하나의 세계를 열어 놓고, 이 세계가 작품속에 편재하며 머무르게 한다. 작품이 작품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건립함을 뜻한다. 여기서의 세계는 세계화한다.(Welt weltet). 이러한 세계는 그 안에서 마치 우리가 고향에 있는듯 아주 편안히 여겨지는 그러한 것 들보다도 더욱 잘 존재하고(seiender)있다. 세계가 스스로 열림(sich offnen)으로써, 모든 사물들은 자신의 한가로움(Weile)과 바쁨(Eile)을 부여받으며, 또 자신의 멂과 가까움, 그리고 넓음과 좁음을 부여받는다. 하나의 자품이 작품으로서 존재함으로써, 그 작품은 전체적인 저 공간을 마련해준다. 공간을 마련해준다(einraumen)는 것은, 여기서 특히 열린 장의 트인곳을 마련해주면서(freigeben),이렇게 트인 곳을 자신의 전체적인 특성들 속에 설립한다. (ein-richten)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설립함은 이미 언급한 세워놓음(er-richten)으로부터 현성한다. 작품은 작품으로서 하나의세계를 건립한다. 작품은 세계의 열린장을 열어 놓는다.

 

작품으로서의 작품은 그 본질에 있어 제작적(herstellend)이다. 그러나 작품은 무엇을 제작하는 것일까? 도구는 용도성과 유용성(Brauchbarkeit)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것, 즉 질료(재료)를 자신의 쓰임새(Dienst)속에서 받아들인다. 이에반해 신전이란 작품은 하나의 세계를 건립하면서 질료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으로 질료를 나타나게 하며, 그것도 작품의 세계의 열린 장안에서 나타나게 한다.

거기로(Wohin) 작품이 되돌아가 자기를 세우게 되는 그곳, 다시 말해 이렇게 되돌아가- 자기를-세우는 가운데 작품이 나타나게 하는 바로 그것(was), 이러한 것을 우리는 대지(Erde)라고 부른다. 대지는 나타나면서(솟아나오면서) - 감싸주는 것(간직하는 것)(das Hervorkommend - Bergende)이다. 대지는 전혀 아무것에로도 강요되지 않은 채 고단함이 없이 지치지 않는것(das zu nichts gedrangte Muhelose-Unermudiche)이다. 역사적 인간은 세계에 거주하는 자신의 거주함을 대지위에 그리고 대지 가운데 터 닦는다.(Auf die Erde und in sie Grundet der geschichtliche Mensch  sein Wohmen in der Welt). 작품이 하나의 세계를 건립함으로써, 작품은 대지를 세계의 열린장속으로 불러 내세운다. 작품은 대지 자체를 세계의 열린 장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rucken) 거기에서 대지를 확고히 견지한다. 작품은 대지를 하나의 대지로서 존재하게 한다.(Das Werke labt die Erde eine Erde sein). 대지는 본질적으로 자기를 닫아두고 있는 것(das wesenhaft Sich-verschlieBende)이다. '대지를 불러-내세운다'(her-stellen)는 것은 '자기를 담아두고 있는 것으로서의 대지를 (세계의)열린 장 속으로 데려온다'는 뜻이다.

 

세계의 건립(열어 세움)과 대지의 내세움(불러 내세움)은 작품의 작품 존재에 속해있는 두가지 본질적 특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은 작품 존재의 통일성(단일성)속에 함꼐 속해있다. 우리가 작품의 자기-안에-서-있음(In-sich-stehen)을 사색하고 '자기-속에-고요히-머무르는'(Auf-sich-berehen)이렇게 하나로 완결된 '고요함'(Ruhe)을 말하려고 시도할 경우에, 우리는 비로소 이러한 통일성을 찾게 된다. 세계란, 역사적 민족의 숙명속에서 단순하고도 소박한 본질적 결정들이 내려지는 드넓은 궤도가 스스로 열리는 개방성(Offenheit,열려있음)이다. 대지란, 언제나 자기를 꼭 닫아두고 있으면서도 그럼식으로 감싸주는 것이 전혀 아무런 강요됨도 없이 나타나고 있음이다. 세계와 대지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세계는 대지 위에 근거하며 대지는 세계를 솟아오르게 한다(durchragen). 세계와 대지의 대립은 어떤 하나의 투쟁(streit)이다. 작품은 하나의 세계를 건립하고 대지를 내세움으로써, 이러한 투쟁을 일으킨다. 세계를 건립하고 대지를 내세우면서, 작품은 이러한 투쟁을 원수 한다. 작품의 작품존재는 세계와 대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투쟁의 격돌(die Besteittung des Streites)속에 존립한다.

 

진리란 참된 것의 본질이다. 본질이란, 거기에서 모든 참된것이 일치하는 공통적인 것(das Gemeinsame)이라고 여겨진다. 어떤것의 본질적 본질은 어디에 존립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존재자가 참으로 진리속에 존재한다(ist)는 점에 존립할 것이다. 어떤 사태의 본질은 그것의 참된 존재로부터, 즉 그때 그때 존재하는 존재자의 진리로부터 규정된다.

 

비은폐성 자체란 무엇인가? 사물들은 존재하며, 인간도, 베풂도, 희생도 존재하고, 동물과 식물도 존재하며, 도구와 작품도 존재한다. 존재자는 존재속에 거한다. 존재를 통해서, 신적인 것과 반신적인 것 사이에 매여있는 어떤 감추어진 숙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자를 넘어서서, 그렇다고 존재자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자에 앞서, 어떤 다른 것이 일어나고 있다. 존재자 전체의 한가운데(Inmitten des Seienden im Ganzen)에는 어떤 열린 장소(eine offene Stelle)가 현성한다. 다시 말해 어떤 환한 밝힘(Light-ung,환히 트인 터)이 존재한다. 존재자는, 그것이 환한 밝힘에 의해 환히 밝혀진 곳으로 들어서고 이렇나 열린 장으로 나와-서-있을때에만, 존재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존재자의 비은폐성, 그것은 결코 눈앞에 현존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존재의 진리가 일어나는 어떤 일어남(ein Geschehnis, 생성)이다. 비은폐성(진리)은 존재자라는 의미에서의 사물의 어떤 속성이나 혹은 명제의 어떤 속성이 아니다. 비은폐성으로서의 진리의 본질속에는 이러한 완강한 거부가 이중적 은닉함의 방식으로 속해있다. 진리의 본질속에서는 은닉하는 완강환 거부와 더불어, 진리의 본질 속에 환한 밝힘과 은닉사이에서 존립하는 대립적 성격(das Gegenwendige)이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근원적 투쟁의 대립(das Gengeneinander des ursprunglichen Streites)이다. 진리의 본질은 그 자체에 있어서, 거기에 존재자가 들어서 있으면서도 거기로부터 존재자가 스스로를 자기 자신에세로 물러나 세우는 저 열린 한가운데(offene Mitte)를 쟁취하려는 근원적 투쟁(Urstreit)이다. 진리가 환한 밝힘과 은닉사이의 근원적 투쟁으로서 일어나는 한에서만, 대지는 세계를 솟아오르게 하고(durchragen),세계는 대지위에 스스로 지반을 놓는다(sich-grunden). 그러나 진리는 어떻게 일어나는가(geschehen)?그것은 아주 드문 본질적 방식 속에서만 일어난다고 우리는 답한다. 그러난 이것은 답이 아니다. 진리가 일어나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가 작품의 작품 존재이다. 세계를 건립하고 대지를 내세우는 작품은 투쟁의 격돌이며, 이러한 투쟁 속에서 존재자 전체(das Seiende im Ganzen)의 비은폐성이 - 즉 진리가- 쟁취된다. 

 

반 고흐의그림속에서는 진리가 일어나고 있다. 신발이라는 도구의 도구존재가 개방될 경우에 이러한 존재자의 존재의 개방됨 속에서는 존재자 전체가- 즉 서로 서로 맞대항하는 세계와 대지가- 존재자체의 비은폐성 안으로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작품속에는 진리가 작용하고 있으며 신발이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자신의 본질속에서 나타나면 나타날 수록, 그만큼 더 직접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그것들과 더불어 모든 존재가는 더욱더 잘 존재하게 도니다. 이런식으로 '스스로를 은닉하는 존재'는 환히 밝혀진다.

그런식으로 존재하는 빛이 자신의 빛남(Scheinen)이 아름다운 것(das Schone)이다. 아름다움(Schonheit)은 진리가 비은폐성으로서 현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 (1898 ~ 1967)

             

 

             표절, Oil on canvas.  1960

 

             

 

 

  

 

 

 

 

 

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 (1898 ~ 1967 ) : 르네 프랑수아 길랭 마그리트는 초형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벨기에 출신의 화가이다. 1916년 브뤼셀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 ,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다. 이후 조르쥬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작품 속에서 또하나의 세계를 세워 놓는다. 그 세계는 치열한 투쟁의 장소이다. 현실과 상상, 실재와 허구, 존재와 비존재가  하나의 대지 의에 우뚝 선채 하나의 세계를 열어 놓고, 이 세계가 작품속에 편재하며 머무르게 한다. 작품이 작품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건립함을 뜻하며 관람자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 놓는다. 그 세계 안에는 또하나의 열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세계안에는  어떤 빛남 (트임)을 마련해준다.  지나가고 관람객에게 시선을 제공한다.관람객의 시선에는 자신의 멂과 가까움, 그리고 넓음과 좁음을 부여받는다. 하나의 작품이 작품으로서 존재함으로써, 그 작품은 전체적인 저 공간을 마련해준다. 공간을 마련해준다(einraumen)는 것은, 여기서 특히 열린 장의 트인곳을 마련해주면서(freigeben),이렇게 트인 곳을 자신의 전체적인 특성들 속에 설립한다. (ein-richten)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설립함은 이미 언급한 세워놓음(er-richten)으로부터 현성한다. 작품은 작품으로서 하나의세계를 건립한다. 작품은 세계의 열린장을 열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