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서 텍스트로 /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롤랑 바르트(1915. 11 ~ 1980. 3 )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비평가로서 소르본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이후 1952년 파리의 국립 과학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근대문학의 형성을 다룬 1953년 『글쓰기의 영도』, 1957년 일상생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기고문을 모아 엮은 『신화론』을 썼다. 1976년에 콜레쥬 드 프랑스의 문학 기호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바르트의 다방면의 작품들은 고유한 발전과 현실적 위치를 끊임없이 성찰한 결과들이다. 198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지난 몇년간 언어에 대한 개념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현상적인 존재 여부가 언어에 달려있는 문학작품의 개념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근래의 언어학.인류학.마르크스 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발전과 명백하게 연계된다. 작품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것은 이러한 영역들 내부의 쇄신에서 오는 것이아니라, 전통적으로 어떤 영역에도 속하지 않았던 사물에 대한 각 영역들의 입장이 상호 충돌함으로써 생겨난다.
뉴턴식의 방식으로 오랜시간 인식되어 온 전통적인 작품(Work)의 개념에 반대하여, 이제 과거의 범주를 이동 또는 전복시켜서 나온 새로운 대상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그 대상이 바로 텍스트(Text)이다. 다음에 뒤따르는 것들은 논쟁이 아니라, 은유로서 남아있는 논술이자 접촉(touch)이며 접근이다. 그것들의 교차점에 위치한 명제들은 방법론, 장르, 기호, 복수성, 계보, 도서, 즐거움과 관계된다.
1. 텍스트는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텍스트로부터 작품을 물질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특히 작품은 고전적이며, 텍스트는 전위적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오랜된 작품에서도 텍스트가 있을 수 있으며, 현대의 작품들이라도 전혀 텍스트가 아닐 수 있다. 작품은 본질의 단편으로서 책들의 공간 일부를 점유하지만, 텍스트는 방법론적인 영역이다. 이러한 대조는 라캉의 '현실(reality)'과 실재(the real)간의 구분을 연상시킨다. 즉 '현실'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며 '실재'는 표현되는 것이다.(La realite se montre, le reel se demontre). 이와 마찬가지로 작품은 보여질 수 있는 것이며, 텍스트는 표현의 과정이자 일정한 법칙들에 따라서 말해지는 것이다. 작품은 손에 잡히는 것이지만, 텍스트는 언어안에서 잡히며 오로지 담론(discourse)의 움직임 안에서만 존재한다. 텍스트는 작품의 분해가 아니며, 텍스트의 상상적인 꼬리가 바로 작품이다. 텍스트를 구성하는 움직임은 횡단(traversee)의 움직임이다.
2.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은 오래된 분류들을 향한 파괴적인 힘이다. 조르주 바타이유와 같은 작가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그는 단하나의 텍스트만을 지속적으로 쓴 셈이다. (쟝르 파괴적)만일 텍스트가 분류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텍스트가 언제나 어떤 한계의 체험에 연루되기 때문이다. 문자상의 뜻대로만 표현한다면, 텍스트는 언제나 반론적이다.
3. 텍스트는 기호에 대한 반응으로 접근되거나 체험되는 것이다. 작품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일반적인 기호로 작용하며, 따라서 그것이 기호문면의 제도적인 범주를 표상한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와 반대로 텍스트는는 기의의 무한한 지연을 행한다. 텍스트는 지연된다. 텍스트의 영역은 기표의 영역이다. 기표의 무한성은 뭔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의 개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희의 개념을 지칭한다. 텍스트를 지배하는 논리는 이해가 아니라 환유이다. 대부분의 경우 작품은 온건하게 상징적이다. 텍스트는 극단적으로 상징적이다. 전적으로 사징적인 속성안에서 구상되고 인지되고 수용된 작품이 바로 텍스트이다.
4. 텍스트는 복수적이다. 이것은 의미의 감축 불가능한 복수태를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텍스트는 의미의 공존이 아니라 통과이며 횡단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텍스트의 경우에서조차도, 그것은 해석의 결과가 아니라 폭발,분출의 결과이다. 텍스트의 복수태는 그 내용의 모호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표들의 직조가 이루는 소위 입체적인 복수태에 의존한다. 텍스트는 그것의 다양성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은 일회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인용과 지시물, 메아리들, 광범위한 입체 음향 등을 여기 저기 횡단하는 과거 혹은 현대의 문화적 언어들로 짜여져 있다.
5. 작품은 계보의 과정에 연루된다. 세계에 의한 작품의 한정, 작품들간의 논리적 연계, 작품과 저자와의 일치를 전제로 한다. 저자는 작품의 아버지이자 소유자로 간주된다. 텍스트의 경유는 아버지를 기입하지 않고도 읽혀질 수 있다. 텍스트의 은유는 작품의 은유와 구분된다. 텍스트의은유는 망(network)의 은유이다. 텍스트가 확장된다면 그것은 체계의결합에 따른 결과이다.(게다가 그 이미지는 생명체에 대한 최근의 생물학적 개면에 가깝다). 따라서 텍스트에서는 어떤한 생명의 존중도 나타나지 않는다. 상호 텍스트의 재구성은 역설적으로 모든 유산을 제거하기 때문에, 텍스트는 아버지의 보증 없이도 읽혀질 수 있다. 소설가가 그리는 서술은 더이상 특권적,가부장적인 것이 아니며 유희와도 같다. 말하자면 그는 종이저자(paper-aythor)가 된다. 그의 삶은 더 이상 허구의 원천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작품에 기여하는 하나의 허구이다. 삶과 작품의 자리가 도치된 예로서 그들의 삶 자체가 텍스트로 읽혀지게 만든 푸르스트와 주네의 작품이 있다. 텍스트를 집필하는 나는 단지 종이위의 나(paper-I)일 뿐이다.
6. 작품은 일반적으로 소비의 대상이다. 오늘날 책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읽는 작업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질'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텍스트는 작품을 소비로부터 건져내서 유희,행동,생산,실천으로 집결시킨다. 이는 텍스트가 글쓰기와 읽기 사이에 있는 거리를 파기할 것(적어도 감소 시킬것)을 요구한다는의미이다. 그것은 독자가 작품 속에 투사되는 것을 강화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둘을 단일한 의미화의 실행속에 결합시킴으로써 이루어 진다. 읽기와 쓰기를 분리시키는 거리는 역사의 산물이다. 음악의 역사는 실상 텍스트의 역사와 거의 동일하다. 우리는 오늘날 후기 연차적인(post-serial)음악이 '해석자'의 역할을 급격히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주자는 악보의 공동저자(co-author)의 일종으로 간주되며, 악보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완성시킨다. 텍스트는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악보와 매우 유사하다. 텍스트는 독자에게 실질적인 협동을 요구한다.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느쪽이 더 중요한 변화인가? (말라르메 stephane Mallarme는 청중들이 책을 만들어내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에는 비평가들만이 (단어들을 가지고 유희하면서)작품을 완성 시킨다. 많은 현대적인 (난해한) 텍스트와 전위 영화, 그림 앞에서 '권태'는 분명 읽기를 단순한 소비로 축소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루하다는 것은 곧 독자 스스로가 텍스트를 창조하고 개방하며 움직이도록 만들지 못했음 을 의미한다.
7. 이러한 사실은 텍스트에 대한 마지막 논의, 즉 텍스트의 즐거움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일부 부분적으로 여전히 소비의 즐거움이 남아있기는 하지만..그런데 텍스트의 경우에는 분리가 없는 즐거움이 연계된다. 기표의 범주에 속하는 텍스트는 사회적인 유토피아에 나름대로 기여한다. 선사시대에 텍스트는 사회적 관계의 투명성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언어 관계의 투명성을 이루었다. 텍스트는 어떤한 언어도 다른것을 뛰어넘지 않으며, 언어들이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공간이다. 메타언어를 파괴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의문시하는 일은 텍스트이론의 일부를 이룬다. 텍스트 이론의 담론은 그 자체가 텍스트이자 연구이자 텍스트 활동이다. 왜냐하면 텍스트는 어떤 언어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며, 어떤 서술 행위의 주체도 심판자, 주인, 분석가, 고백자, 해독자의 위치로 놔두지 않는 사회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이론은 쓰기 실행과 더불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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